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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사진이… 거짓말 하겠느냐고?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셀카,’ 즉 자가촬영은 휴대전화 카메라가 발달하면서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됐다. 특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발달하면서 대중에게 ‘많이 보여지는 것’에서 자기 가치를 찾는 연예인들은 부지런히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린다.

요즘은 ‘민낯 셀카’가 대세다. 연예인은 침대에서 약간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로, 또는 세면대 앞에서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린다. 그러면 수많은 온라인뉴스 매체가 그 사진을 싣고 “사진을 본 네티즌은 ‘민낯도 정말 예쁘다’ ‘아기 피부네요’라는 반응을 보였다”로 끝나는 기사를 대량생산한다. 마치 시트콤 중간중간에 추임새로 나오는 웃음소리처럼 정체불명 네티즌의 환호로 추임새를 넣으며 끝맺는 것이 연예인 셀카 기사의 양식인 모양이다.

‘민낯 셀카’는 화장으로 미화되지 않은 본래 얼굴도 예쁘고 잘생겼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연예인의 의지의 표상이다. 그리고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런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린다. 하지만 진짜 ‘민낯’이라도 ‘셀카’이기에 그 진실성은 약해진다는 것이 셀카 달인들의 증언이다. 셀카 이미지는 왜곡이 쉽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셀카는 카메라를 위로 해서 얼굴이 내려다보이는 소위 ‘얼짱 각도’로 찍혀 있다. 이렇게 하면 눈은 실제보다 크게, 하관은 짧게, 턱은 갸름하게 나오는 ‘동안 미모’가 완성된다. 여기에 빛의 강도와 각도를 잘 택하면 피부의 잡티를 별다른 보정 없이 안 보이게 할 수 있다.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는 큰 화면에 자기 얼굴을 보면서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모습이 나오게 하기가 더욱 쉽다. 마음에 안 들게 찍혔으면 필름 현상 값을 아까워하며 사진을 찢던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가볍게 삭제 버튼을 눌러주면 된다. 그리고 원하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찍고 또 찍는다. 찍은 얼굴을 즉석에서 ‘뽀샤시하게’ 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동원할 수도 있다. 마침내 가장 잘 나온 순간의 얼굴을 골라 SNS에 올린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궁극의 포토샵 기능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생산된 셀카 이미지는 사진이 실제를 가장 충실하게 재현하는 사실적 매체라는 전통적인 관념을 부수며, 오히려 사진이 가장 허구적이고 환상적 매체라는 포스트모던 명제를 증명한다.

셀카 이미지가 만드는 허구의 힘은 그 실물을 보지 못하고 사진만 보는 사람에게 환상을 심어줄 뿐 아니라, 바로 사진의 피사체인 동시에 사진을 찍은 주체인 자신의 기억까지 왜곡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못생기게 나온 셀카 이미지를 보면 재빨리 삭제 버튼을 누르며 그것이 자기 얼굴이라는 기억도 함께 삭제한다. 그리고 SNS에 올린, 각도와 조명과 때로는 포토샵에 의해 미화된 사진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것이 나의 진짜 얼굴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실제 얼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건만.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셀카는 그 피사체와 제작 주체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화가들의 자화상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자화상과는 꽤나 다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목요일에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서 시작한 ‘반 고흐 인 파리’ 전시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이 9점 나와 있다(사진). 반 고흐는 이 전시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파리 체류 기간에 자화상을 특히 많이 그렸다.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일단은 너무 가난해서 다른 모델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시된 자화상들을 보면 파리에 와서 인상주의를 접하고 새로운 화풍을 자기 얼굴로 시험해 보는 반 고흐의 열정이 느껴진다. 이 얼굴들에는 어떤 미화도 없다. 가난에 시달리는 젊은 화가의 불안과 굳은 의지가 뒤섞인 심각한 표정만 있을 뿐이다.

반 고흐와 함께 자화상으로 유명한 미술 거장은 렘브란트 판 레인이다. 그는 잘나가던 젊은 시절부터 파산과 질병으로 시달리던 노년까지 100여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젊은 시절의 자화상은 자기애와 호기가 두드러지는 반면 노년의 자화상에는 자조, 그리고 자조를 넘어선 스스로에 대한 냉엄한 성찰이 나타난다.
흔히 사진은 객관적이고 회화는 주관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인물 사진이 단편적인 찰나밖에 잡지 못하는 반면, 자화상을 비롯한 초상화는 그 모델의 외면뿐 아니라 내면에 대한 오랜 관찰이 함축돼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진실을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확실히 자기 기만의 결정체인 셀카 사진 이미지를 보면, 사진이 회화보다 사실적이며 객관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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