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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내닫는 물 흐르듯 날렵한 몸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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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호 14면

1 제너럴 모터스의 뷰익 Y-Job. 유선형 스타일을 상업적으로 가장 잘 활용한 GM의 디자인 부서 책임자인 할리 얼이 GM의 미래 자동차 방향을 제시한 컨셉트카다. 1938년 발표했다. 그 뒤 미국에서는 유선형 자동차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1930년대 할리우드 갱 영화를 보면 갱들이 달리는 자동차 문 아래 약 20㎝ 정도 나와 있는 발판(running board)에 서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당시 자동차는 ‘펜더(fender)’라고 불리는 장치가 엔진룸 옆에 있었다. 바퀴 앞부분부터 뒤쪽까지 아치 형태로 생긴 펜더는 흙이나 돌로부터 바퀴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것이 차체와 떨어져 별도로 있었다. 그리고 펜더 라인을 따라 자연스럽게 자동차 옆문으로 발판이 존재했던 것이다.

김신의 맥락으로 읽는 디자인 <12> 유선형 자동차

펜더와 발판이 생긴 것은 근본적으로 자동차가 마차를 모방했기 때문이다. 마차는 객실과 별도로 떨어진 바퀴가 존재했고, 초창기 자동차는 이 바퀴 위에 펜더를 달았을 뿐 구조는 마차와 똑같았다. 이 형태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속도 경쟁을 하면서부터다.

2 폴크스바겐 비틀. 독일의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타트라의 영향을 받아 앞부분이 둥그런 유선형 자동차를 1938년 개발했다.3 크라이슬러 에어플로(Airflow). 크라이슬러는 1934년 미국에서 최초의 유선형 자동차를 개발했다. 너무나 혁신적인 스타일 때문에 판매에는 실패했지만, 그 뒤 미국 자동차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4 타트라(Tatra) 87. 체코의 자동차 기술자 한스 레드빈카가 1933년 발표한 혁신적인 유선형 자동차 타트라 77을 발전시킨 모델로 당시로서는 놀랍게도 시속 160㎞를 넘어섰다. 5 다이맥시온(Dymaxion). 미국의 건축가이자 발명가인 벅민스터 풀러는 지상에서 나는 자동차를 꿈꾸고 비행기의 유선형을 적용한 다이맥시온 자동차를 1933년 개발했으나 상용화되지 못했다.

자동차가 상용화되자 사람들은 그 속도감에 열광했다. 자동차는 마차에서 느껴보지 못한 자극과 흥분을 제공했다. 19세기 말부터 자동차 경주대회가 열리기 시작했고, 20세기 초 절정에 달했다. 당시 자동차 경주대회는 마치 올림픽처럼 레이서와 자동차 제조사는 물론 민족과 국가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행사가 되었다. 자동차로 말미암아 속도는 현대성의 본질적인 속성이 됐다. 르코르뷔지에 같은 모더니즘의 개척자들도 자동차를 찬양했다.

속도에 대한 열망에 따라 레이싱용 자동차에서 처음으로 로켓처럼 앞이 뾰족하고 뒤는 원통형으로 생긴 유선형 스타일이 탄생했다. 재료도 목재에서 금속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독일이 자동차 강국 된 아이러니한 사연
20세기 초 더 빠른 속도를 원하는 자동차에 강력한 자극제가 탄생했다. 비행기다. 비행기는 속도에서뿐 아니라 외관에서도 디자이너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비행기는 공중에 계속 떠 있어야 하는 숙명 때문에 그야말로 기능에 완전히 복종하는 기계여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새로운 기계는 전화기나 라디오 같은 발명품과 달리 참고할 만한 전례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가 창조됐다. 모더니스트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전통과의 철저한 단절, 완전히 새로운 형식을 비행기는 발명된 처음부터 갖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르코르뷔지에는 이렇게 외쳤다. “비행기야말로 시대에 뒤진 우리의 의식을 비난하는 손가락이다.”

비행기도 처음에는 날아다니는 상자 모양이었고 기술적 결함으로 다소 복잡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물 흐르듯 유연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갔다. 속도를 높이고 연료를 줄이고자 공기 저항을 연구하고 금속공학 기술을 발전시킨 결과였다. 미국의 비행기 제조회사 더글러스가 1933년부터 발표한 DC 시리즈는 현대 비행기의 원형이다. 날개는 동체 속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되었고, 프로펠러도 날개와 한 몸이 되었다. 앞부분부터 뒷부분까지 마치 돌고래처럼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표면이 매끈한 유선형의 모습을 갖추었다. DC3는 이 시리즈의 최종 결정판으로 예술작품으로까지 그 지위가 격상될 정도였다.

속도와 진보, 현대성의 최첨단 상징물로서 그 지위를 비행기에 빼앗긴 자동차는 재빨리 비행기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공기 저항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그 디자인을 바꾸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초다.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비행기 제작을 금지당한 독일에서는 많은 항공기 기술자가 직장을 잃고 자동차 제작으로 살길을 찾았다. 비행기를 만들던 기술자들은 자연스럽게 자동차에 공기역학적 기술을 적용해 눈물 방울 모양의 차체를 가진 자동차를 디자인했다. 둥그스름한 몸체에 뒤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형태로 마치 비행선 같은 모양이었다.

체코의 혁신적인 자동차 기술자인 한스 레드빈카는 가장 현실적인 유선형 차를 만들었다. 1934년 생산된 타트라(Tatra) 77이 그것이다. 타트라는 과학적 이론에 근거해 기존의 전통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를 창조했다. 그는 눈물 방울 자동차의 단점을 보완해 갑축형(딱정벌레 같은 모양의 차) 자동차의 원조를 탄생시켰다. 이 차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150㎞ 이상의 속도를 냈다.

이에 자극받은 히틀러의 지시로 독일의 국민차를 만든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이 타트라의 형태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우리에게 ‘비틀’로 알려진 차를 1938년 발표했다. 타트라의 뒤를 이어 프랑스에서는 시트로앵 2CV가, 이탈리아에서는 피아트 토폴리노가 생산돼 유럽에서는 상자형 자동차에서 부드러운 유선형의 자동차로 급속한 진화가 이뤄진다.

유럽이 순수하게 공기 저항의 감소와 속도의 상승이라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유선형에 도달했다면, 미국은 속도보다는 이미지와 상징의 언어로서 미학적인 유선형을 취했다. 미국은 1928년 경제공황 이후 기업들이 상품 판매 부진을 극복하고자 디자인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 급부상한 산업 디자이너들은 가전제품에서 시작해 스타일을 떠나 기술적인 생산품으로 여겨지던 자동차와 기차로 디자인의 영역을 확대했다. 이들 최초의 산업 디자이너가 취한 형태는 바로 유선형이었다.

유럽은 기술적으로, 미국은 미학적으로
비행기의 유선형은 ‘저항이 없는 형태’라는 기능과 기술이 집약된 형태였다. 바로 그 점이 소비자에게 먹혀들 거라는 점을 디자이너들은 잘 인식했다. 당시 유선형(streamline)은 기술과 스타일 분야의 전문용어를 넘어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행위를 뜻하는 상징어로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쓰였다. 예를 들어 “유선형으로 비즈니스를 한다”라는 식이다.

자동차에도 그 이미지를 적용했다. 그 최초의 차는 크라이슬러가 1934년 발표한 ‘에어플로우(Airflow)’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둥글게 경사를 지으면서 앞 유리창과 연결됐고, 앞 유리창은 두 장의 유리를 V 형태로 붙여 뒤로 살짝 눕혔다. 당시 자동차들이 평평한 유리를 거의 수직에 가깝게 세웠던 것과 비교하면 큰 혁신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변화는 밖으로 크게 돌출되었던 펜더가 자체 안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돼 전반적으로 일체형에 가까워지게 된 점이다. 더글러스의 비행기처럼 자동차도 엔진룸과 객실·트렁크·펜더·발판 등 뚜렷하게 분리됐던 요소가 하나의 차체로 통합되는 방향으로 진화를 시작한 것이다.

이 차는 당시 소비자들에게 지나치게 과격해 보였는지 판매 실적이 저조했다. 하지만 다른 자동차 회사들에 큰 영향을 주어 1930년대 후반부터 유선형 자동차가 대세가 되었다. 이로써 자동차 발판에 올라가 기관총을 난사하는 묘기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공기 저항을 줄이고자 유선형 스타일을 도입했지만, 이 스타일이 속도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한 것은 미미했다. 이는 결국 속도 자체보다도 속도라는 이미지, 진보와 힘, 미래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로써 자동차는 말 없는 마차에서 좀 더 자동차다운 모습으로 한 단계 올라섰다.



김신씨는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7년 동안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의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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