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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견뎌온 건축과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삶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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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호 26면

저자: 승효상 출판사: 컬처그라퍼 페이지: 284쪽 가격: 1만3800원

건축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이다. 나만의 집을 짓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건축 답사 여행을 떠나는 이도 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건축물에서 받는 그 ‘감동’이란 어디서 오는 걸까. 조형적으로 독특하고 세련된 건물을 만났을 때 느끼는 시각적인 즐거움, 그것이 전부일까.
건축가 승효상(60)은 건축의 진짜 아름다움은 공간을 감싼 ‘껍데기’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삶이 살아 숨 쉬는 내부 공간에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건축을 본다는 것은 ‘공간의 조직’을 느끼는 것이며, 공간의 조직을 제대로 읽으려면 나와 이웃의 삶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승효상의『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이 책은 ‘빈자의 미학’이라는 건축철학으로 유명한 한국의 대표 건축가 승효상이 여행길에서 다양한 건축물을 만나고, 그 ‘공간의 조직’을 음미했던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특히 그가 주목한 것은 ‘비움의 형식’이다. 조선왕조의 신위를 모신 종묘의 월대(月臺)에서 그는 ‘비운 공간이 주는 비물질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이 비움으로 인해 종묘는 “영혼의 공간, 우리 자신을 영원히 질문하게 하는 본질적 공간”이 된다. 반면에 일본 교토 료안사(龍安寺)의 뒷마당은 서구인들을 매료시키는 비움의 공간이다. 하지만 저자는 텅 빈 공간에 기기묘묘한 바위가 세심하게 배치된 이 공간은 철저히 계산된 ‘죽은 비움’을 보여줄 뿐 감동은 없다고 말한다. 그가 사랑하는 비움은 한옥의 마당처럼 사람들이 들고 나는, 채워지고 비워짐을 반복하는 ‘불확정적인 비움’이다.

중앙일보를 비롯해 몇몇 매체에 실렸던 글들을 보완해 묶어낸 책이지만, 한 건축가의 철학과 신념을 읽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는 이유 없이 뒤틀린 형태와 기발한 재료, 요란한 색채로 감싸인 건축에 열광하는 요즘 풍조를 비판하며 ‘가짐보다 쓰임이, 더함보다 나눔이, 채움보다 비움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건축이 가진 윤리성이다. 주변 공간을 감싸안는 경북 경주의 독락당(獨樂堂)과 주변 자연을 압도하기 위해 지어진 서양 건축의 대표작 빌라 로툰다를 비교하는 부분에서는 그의 건축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글 잘 쓰기로 유명한 건축가답게 문장이 유려하다. 하지만 그보다 매력적인 것은 수많은 사람이 경험한 공간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독창적 해석이다. 충남 보령의 성주사터에서는 ‘언젠가는 사라지는 건축의 숙명’을 읽고, 모로코의 페즈에선 ‘다원적 민주주의’의 의미를 곱씹는 그의 통찰력에 감탄하다 보면 하루라도 빨리 배낭을 꾸려 길을 떠나고 싶어진다. 자연이나 건축이 만들어낸 서정적 풍경 위에 그 속의 사람들이 빚어낸 서사적 풍경을 얹어야만 비로소 탄생하는 ‘성찰적 풍경’을 만나기 위해서.

책 제목은 시인 박노해의 시 제목에서 따 왔다. “오랜 시간을 순명하며 살아나온 것/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지는 것/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내용의 시다. 저자는 이 시처럼 시간을 견뎌온 모든 건축과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삶에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낡아짐으로 새로워지기’ 위해 우리의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를 사려깊은 시선으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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