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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전 감독 "팬들에 하도 욕먹으니 아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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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양승호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속상해서 한국시리즈 중계를 보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가 본지 사옥 옥상에 올라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양승호(52) 감독. 대한민국에서 가장 말 많고 탈 많은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를 2년 동안 이끌었다. 2년 연속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놨고, 올해는 두산을 꺾고 준플레이오프를 통과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SK에 2승3패로 발목을 잡혔다. 그는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책임을 지겠다”며 미련 없이 옷을 벗었다.

 한국시리즈가 삼성의 우승으로 끝났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승팀 류중일 감독보다, 준우승한 이만수 SK 감독보다 양승호 감독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 그는 아버지 같은 리더십으로 단기전에 약한 모래알 롯데를 끈끈한 팀으로 바꿔놨다. 그럼에도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11월에 노는 건 1983년 이후 근 30년 만에 처음”이라는 그를 지난 8일 만났다. 깔끔한 양복 차림이었다. ‘기업 CEO를 했어도 크게 성공했을 인물’이라는 평이 틀리지 않구나 싶었다.

롯데 점퍼를 입고 있는 양승호 전 감독.

●한국시리즈는 봤습니까.

 “아예 안 봤어요. 롯데 감독이었으면 공부도 하느라 봤을 텐데 하도 열도 받고 해서. 개인적으로 SK에 2년 연속 진 것에 화가 났어요. 아침에 배달된 신문만 봤지 TV로 경기나 하이라이트는 전혀 안 봤어요.”

●우승한 삼성 류중일 감독이 부럽지 않나요.

 “제가 한대화 한화 감독과 친구인데, 한 감독은 꼴찌 팀을 맡아 3년 내내 고생했죠. 양승호·류중일·이만수는 행복한 감독이라고 봅니다. 좋은 팀을 물려 받았으니까. 지난해에 이어 올해 삼성이 우승하면서 류중일 감독이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그런 팀 물려받은 건 복이 있는 감독입니다.”

●올해 롯데 전력 핵심인 이대호(일본 오릭스), 장원준(경찰청)이 빠졌는데.

 “사실 전력은 지난해 롯데가 더 나았다고 봐요. 그때는 감독 1년차라서 느끼지 못했죠. 올해는 불펜투수 정대현과 이승호가 합류했지만 전력분석원들 의견은 우리가 잘 하면 4~5위라고 했어요. ”

④~5위권 멤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면 잘 한 건데, 왜 책임지겠다고 했죠?

 “시즌 초반 김성배·최대성처럼 의외로 좋은 선수가 나왔어요. 4강 싸움은 해 볼 만하다고 봤죠. 그런데 구단에서 우승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하니까 ‘그만해라. 선수도 부담된다. 어느 감독이 우승 안 하려고 하나. 나도 우승하면 명예와 부가 따른다. 그걸 못하면 남자로서 책임질 건 진다’고 했죠.”

●결국 그 말에 발목 잡힌 건가요.

 “발목 잡힌 게 아니라 그만큼 우승이 절박했어요. 선수들에게 부담주기 싫었어요. 필드의 매니저는 저고,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였어요.”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4차전이죠. 2승1패로 앞선 상태에서 선발 투수가 없었어요. 무리해서라도 1차전 선발이었던 유먼으로 가자고 투수코치와 얘기했죠. 그런데 본인이 몸이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4차전 무너지면 5차전도 힘들다고 봤어요.”

●결론적으로 롯데는 왜 한국시리즈에 못 갔을까요.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시리즈 갈 구성원이 아니었죠. 프로야구는 확실한 1~3선발을 가져야 상위 클래스에 갑니다. 올해 롯데는 1~3선발이 제대로 가지 못했어요. 선발이 40승을 약간 넘기는 수준이라면 중간계투들이 혹사해요. 2군에서 커 오는 선수들이 있어서 빠지면 올라가는 그림이 그려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양떼야구’ ‘혹사’ 이야기가 나왔죠.”

●그 멤버 가지고 준PO 통과했는데, 잘렸어요.

 “그건 제가 말하기 곤란하죠. 제가 선발을 못 키웠다고 볼 수 있는 것이거든요. 야구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3위 감독을 자르고 6위 감독(넥센 김시진)을 데려오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좋은 투수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구단이 욕 먹어도 과감한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려대 감독이었던 양승호는 2010년 말 로이스터 감독이 물러난 롯데를 맡았다. 당시 ‘듣도 보도 못한 사람에게 어떻게 롯데를 맡기나’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하지만 그는 뚝심 있게 자신의 색깔을 롯데에 입혔다.

②010년 감독 선임 직전 롯데 배재후 단장이 ‘롯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일종의 면접을 했죠?

 “공격은 좋은데 수비 짜임새와 작전 야구가 약하다고 했어요. 롯데가 준PO 할 당시 제가 신문에 관전평을 많이 썼는데 롯데는 단기전에 빵점이었어요. 상대팀이 갖고 노는 팀이었죠. 상대가 번트를 대려고 하면 1, 3루수가 전진수비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못 했어요. 그러니 상대는 마음 놓고 작전을 하죠. 짜임새 있는 야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마무리 투수를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죠.”

●직접 와 보니 어떻던가요.

 “처음에는 번트 수비 연습 시간을 늘렸죠. 그런데 1년 안에 안 된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죠. 치라고 하면 번트 대고, 번트 대라고 하면 어설프게 병살타 치고. 경기 뒤에 기자가 물으면 무조건 ‘감독이 잘못했다’고 했지요. 그래도 지난해보다는 올해 좋아진 게 사실이죠.”

●한국에서 롯데 팬만큼 별난 사람들이 있을까요.

 “광안리·해운대 같은 바닷가 한 번도 못 나갔어요. 보는 순간 사인 줄이 좍 늘어서고, 경기 지고 맥주 한잔 하면 ‘개××, 시합 지고 술 먹고 있다’고 욕하고. 부산사람들 뒤끝이 없다고 하는데, 감독 그만두고 나니까 잘했다고 박수 쳐주고 하시더라고요.”

●위축되지는 않았습니까.

 “전혀 없었어요. 그게 나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지난해 4월 하도 욕을 먹으니 이러다가 사람 죽겠다 싶더라고요. 아내가 구단에 전화해 제 아파트 숙소를 23층에서 2층으로 바꿔달라고 했어요. 연예인 자살이 이해가더라고요.”

●그런 부산 팬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야구 없는) 겨울에는 어떻게 지내시나 모르겠어요(웃음). LG 팬들이 극성이라고 하는데, 그건 극성이 아니라 아양이죠.”

●롯데는 선수들도 연예인급 인기를 누리는데 관리가 어렵지는 않았나요.

 “선수가 부인과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여자 만난다고 소문이 납니다. 총각 애들이 술 먹으면 바로 문자와 사진이 제 휴대전화로 뜹니다. 팬이 감시원 역할을 해 주는 거죠.”

●이렇게 지극정성을 바치는 팬들이 있는데, 롯데가 투자에 좀 인색한 것 아닌가요.

 “저는 구단 살림 내용은 잘 모르고요. ‘돈을 좀 써 주십시오’하면 ‘다른 팀 하는 것 보고 하겠습니다’ 그런 건 있었죠. 저는 왜 다른 팀을 보고 하시냐 선두주자가 되시라고 했어요”

●신일중·고 감독 때 선수들에게 ‘야구를 즐기라’고 하셨는데, 프로 선수들에게도 그러시는지.

 “그라운드에 나가서 즐기라는 뜻이 아니죠. 프로는 직업이니까 경기 4시간 동안은 집중해 달라. 그러나 결과가 안 좋으면 얼른 집에 들어가서 재미있게 놀고 가족과 보내라. 네가 지난 일에 집착하고 즐기지 못하면 가족이 불행해진다고 하죠.”

●본인도 선수 때 즐겼나요?

 “즐기지 못했죠. 저는 친구들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그러다 다쳐서 프로를 4년밖에 못했습니다. 그게 가슴에 박혔지요. 안정된 직장인 신일고를 그만두고 OB(현 두산)에서 전력분석원을 시작했습니다. 꼭 프로 감독을 해 보고 싶었거든요. 당시 자원해서 원정기록을 다니겠다고 했어요. 어둡고 힘든 일이었지만 상대를 알아야 하니까. 이후 스카우트와 2군 코치를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과정을 거친 건 잘했어요. 제가 프런트 직원들을 이해하고 전력분석원들 고생하는 것도 잘 알고요. 롯데 그만둘 때 구단 직원들이 창단 30년 만에 처음으로 감사패를 만들어 주더라고요.”

●덕장이라는 소리를 듣고 선수들은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하는데, 그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겠죠.

 “저도 강할 때는 강합니다. 그게 롯데를 그만두게 된 원인이 아닌가 싶어요. 선수 기용 같은 문제로 윗분들과 많이 부닥쳤어요. 감히 구단주와 싸우겠느냐고 하는데 저는 싸웠죠. 그 틀에서 벗어나면 안 한다고요.”

●일반 직장 간부를 해도 잘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듣는데요. 롯데 선수 중 직원으로 데려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손아섭이죠. ‘이게 먹는 것이다’하면 먹으려고 합니다. 홀어머니 모시고 고생해 봐서 세상을 좀 알아요. 일 잘하는 건 조성환·홍성흔이지만 손아섭은 먹는 방법을 알아요. 직원은 그런 사람을 써야죠.”

 양 감독은 고교생 딸, 중학생 아들을 두고 있다. 지난 7일 일찍 수업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공원을 산책했다고 한다. 아이들 손 잡아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언젠가 피 말리는 승부가 있는 그라운드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어떤 팀을 맡고 싶은지 물었다.

 “우승에 가까이 있는 팀을 맡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 팀에서 누가 쉽게 물러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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