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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할리우드의 구세주 DVD

중앙일보

입력

용량이 CD의 14배로 삭제 장면도 담을 수 있어
플레이어 보급률 급증하고 수익성 높아 영화 제작 활기

이제 64세가 된 구식 백설공주가 은퇴할 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디즈니사는 1937년 만화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제작한 이후 여덟차례의 재개봉과 두차례의 비디오테이프 한정 판매로 11억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디즈니는 오는 10월 9일 차세대 DVD 버전 출시로 또 다른 성공을 꾀하고 있다. 마이클 아이스너 디즈니 회장은 주주들이 이 DVD를 한번 보고 마치 마녀의 사과를 먹은 것처럼 ‘진주만’ 같은 실패작들은 깨끗이 잊어버리기를 바란다. 2년에 걸쳐 제작된 백설공주 DVD는 4개 언어로 들을 수 있는 15시간짜리 압축 디지털 오락물로 CD 크기의 은색 디스크 두장에 담겨 있다.

영화의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쌍방향 도피(난쟁이 가운데 한명의 이름) 게임, 그리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부른 주제가 ‘언젠가는 나의 왕자님이 오리’(Some Day My Prince Will Come)의 오리지널 녹음이 실려 있다.

또 못된 왕비의 성을 돌아보는 가상투어가 가능하고 그림 형제의 원작 동화를 읽을 수도 있다. 이 백설공주 종합편을 안내하는 녹색 얼굴의 요술 거울은 이용자들이 메뉴 선택에서 꾸물대면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아느냐’고 호통친다. 디즈니의 홈엔터테인먼트 책임자 밥 채펙은 이번 DVD 출시를 두고 “최초의 진정한 ‘몰입 체험’”이라고 말했다.

이 ‘몰입 체험’이야말로 침체하는 할리우드의 경기를 활성화할 방책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현재 DVD 플레이어는 역사상 다른 어떤 전자제품보다 빠른 속도로 미국 가정에 보급되고 있다. 또 지난 한햇동안 미국 소비자들이 DVD 영화 타이틀 구입에 쏟아부은 돈은 42억달러에 이른다.

미국인들은 ‘글래디에이터’(5백만편 이상)와 ‘와호장룡’(2백만편 이상) 등의 DVD 버전을 전례없는 규모로 구입하고 있다. 그들은 장당 18∼25달러의 DVD를 비디오테이프처럼 대여해서 보는 대신 아예 사들이고 있다.

할리우드의 최대 고객에 속하는 블록버스터(영화 소매 및 대여회사)의 존 안티오코 최고경영자는 DVD가 VHS 비디오테이프보다 생산가가 낮아 영화사들이 DVD 1장에 10∼13달러의 순수익을 올린다고 말했다. DVD에 대한 높은 수요는 현재 할리우드의 성장에 기여하는 거의 유일한 요인이다.

지난해 할리우드의 전세계 수입은 극장 흥행 및 홈비디오 판매 수입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33억달러가 증가해 약 3백억달러에 이르렀다. 증가분의 60%를 DVD가 차지했다. 아이스너는 “극장 흥행으로는 이익을 보기 어려운 것이 세계적 추세이지만 DVD는 수익성이 아주 높다”고 말했다.

DVD와 CD는 ‘광저장 기술’이라는 동일 유전자를 지닌 형제나 다름 없다. 겉모양도 은빛 플라스틱 디스크로 거의 똑같아 보인다. 그러나 양면 DVD는 용량이 CD의 14배에 이른다. 영화 전편(全篇)과 음성다중 언어 트랙, 삭제된 장면이나 배우의 일대기 같은 보너스 자료들을 담을 만큼 공간이 넉넉할 뿐 아니라 화질과 음질이 비디오테이프에 비해 월등하다.

또 게임과 텍스트, 음악과 기타 멀티미디어 자료들을 저장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플라스틱 디스크에 있는 수십억개의 미세한 구멍에 디지털 콘텐츠로 삽입돼 있다가 레이저빔에 의해 재생된다. DVD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igital video disc)가 아니라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igital versatile disc)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거의 모든 PC뿐 아니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출시할 예정인 X박스도 DVD 드라이브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 최대의 상업적 성과는 DVD 영화다.

DVD는 이런 강한 영향력으로 할리우드의 영화제작 방식 자체에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현재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들은 계약서에 영화가 DVD로 제작될 경우 ‘디렉터스 컷’(감독의 의도대로 편집된 버전)을 넣을 수 있다는 문구를 삽입하고 있다.

연예업계의 한 최고위 간부는 감독들이 시청자에게 “못된 대형 영화사의 횡포로 편집된 부분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감독들은 또 “이 장면은 DVD에 담겠다”는 다짐으로 촬영장에서 배우들의 상한 감정을 달랠 수 있다.

캐머런 크로 감독은 “삭제되는 장면에 대해 배우들에게 제공되는 새로운 형태의 보상”이라고 말했다. DVD는 공간이 넉넉하기 때문에 영화사들은 이를 채우기 위해 극장 영화의 재판인 비디오테이프와 달리 완전히 새로운 상품을 제작하고 있다. 폭스 영화사는 팀 버튼의 ‘혹성탈출’을 찍을 때 촬영장에 DVD 자료 수집을 위한 별도의 제작진을 두었다. 또 ‘너티 프로페서2’의 피터 시걸 감독은 DVD 제작을 위해 별도의 편집 버전을 만들었다.

그러나 DVD 영화는 1997년 처음 등장하자마자 거의 실패작으로 간주됐다. 할리우드와 전자제품 업체들·대형 소매상들이 거의 한결같이 DVD에 반대한 것이다. 불법복제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DVD 기술은 뜻밖의 인물을 만나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워너 브러더스의 홈엔터테인먼트 책임자인 워런 리버파브(57)였다.

리버파브는 1980년대 홈비디오 홍보전에서 미국 시골의 소규모 소매점들을 상대로 ‘리쎌 웨폰’을 판매할 때도 말을 들어줄 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붙들고 DVD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CD가 LP 레코드를 대체한 것처럼 DVD가 비디오테이프를 대체할 것으로 믿었다.

리버파브는 첨단기술자는 아니지만 AOL 타임워너의 제럴드 레빈 회장이 말한 대로 ‘창의적인 사람’이다(그는 워너 브러더스에서 근무한 지난 23년 동안 두번 해고됐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너무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것이 문제였다).

리버파브는 DVD에 대한 열정적인 홍보로 비난과 찬사를 한몸에 받으며 ‘DVD의 대부’로 떠올랐다. 베타맥스와 VHS 방식을 놓고 수년 동안 논쟁이 벌어졌던 홈비디오 초창기의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리버파브는 단일 DVD 표준으로 업계를 통일시킴으로써 대성공의 기초를 다졌다. 또 그는 타임워너와 막강한 경쟁업체들 간의 타협을 이끌어내 DVD에 대한 필수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예를 들면 루퍼트 머독이 폭스 영화의 DVD 출시에 합의하자 타임워너는 머독의 폭스 뉴스 채널을 타임워너 케이블 TV에서 방송하는 것을 허용했다. 또 타임워너가 유리한 가격 조건으로 워너 브러더스 비디오의 공급을 늘려달라는 블록버스터의 요구에 응하는 대가로 블록버스터의 모회사인 바이어컴은 패러마운트 영화사의 DVD 영화 출시를 허용했다. 워너 브러더스는 또 할리우드 최고의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DVD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그가 공동 소유한 DVD 오디오 기술을 사용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를 디지털 디스크에 담는다는 아이디어를 리버파브가 처음 낸 것은 아니다. 1970년대에 앨범 크기의 값비싼 레이저 디스크를 생산한 IBM과 MCA(현재의 비방디 유니버설)의 디스코비전 제휴를 포함해 몇건의 시도가 있었다. 파이오니어가 내놓은 2세대 레이저 디스크 역시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CD 크기의, 좀더 작고 소비자에게 친근감을 주는 디지털 디스크를 생각해낸 것은 리버파브였다. 그는 영화 디스크가 다양한 채널과 향상된 화질로 홈비디오를 위협할 디지털 TV에 대한 대응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끈질긴 홍보전을 펼쳤다. 1980년대 말 워너 브러더스는 필립스(소니와 함께 오디오 CD 기술을 공동 소유했다)와 DVD 기술의 초기 버전 작업을 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1990년대 초 리버파브는 녹화가능한 광디스크에 대한 연구를 지휘하던 도시바의 간부 하세 고지와 우연히 손잡게 됐다. 둘은 1992년 도시바와 타임워너가 경영제휴를 맺은 뒤 서로를 알게 됐다. 당시 타임워너의 회장이었던 레빈은 “모두들 제휴를 엉터리라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리버파브와 도시바가 이끈 연구팀은 ‘타즈’(Taz)라는 암호명 아래 1994년 DVD 원형을 선보였다.

그러자 소니와 필립스도 그에 상응하는 디스크를 개발해 그에 맞섰다. 도시바-워너는 줄곧 소니와 필립스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가 없었다. 갈등의 뿌리에는 로열티 문제가 있었다. 소니와 필립스는 DVD의 필수 부품이었던 CD의 기술 특허권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DVD를 CD로 명하도록 밀어붙였다. 막대한 로열티 때문이었다. CD 로열티는 소니 하나만 해도 연간 7억달러가 넘었다.

도시바-워너와 소니-필립스의 밀고 당기는 싸움은 1995년 중반까지 계속됐다. 바로 그때 컴퓨터 산업이 급부상했다. 새로운 데이터 저장 수단을 찾던 컴퓨터 업계는 광기술에 매료됐다. 특히 IBM은 광디스크를 노트북 컴퓨터 개발 계획에 필수적인 부품으로 간주했다. 리버파브는 IBM의 부사장이었던 댄 설리번과 뜻이 맞았다.

둘은 영화와 컴퓨터 데이터를 둘 다 저장할 수 있는 DVD가 나오면 소비자 수요가 급증하게 되고 그 결과 제조단가를 신속히 낮출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 뒤 IBM을 떠난 설리번은 “리버파브는 DVD 플레이어의 가격을 2년이나 더 빨리 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리버파브는 일본의 대기업 및 필립스와 오랫동안 사업을 해온 IBM이 타협을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다.

1995년 후반 결국 양진영이 손을 잡았다. 그러나 리버파브의 노력은 타임워너 내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워너 뮤직 그룹은 대규모 CD 제작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리버파브는 DVD 대량생산의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기술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워너 뮤직 그룹의 경영진은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레빈은 “워너 브러더스의 경영진은 리버파브에게 전적인 협조를 제공하지 않았다. DVD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레빈은 개인적으로 리버파브의 DVD 연구예산을 승인했고 워너 뮤직 그룹 경영진에게 협조를 지시했다.

그러나 또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나머지 영화사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디즈니·폭스·패러마운트는 영화의 DVD 제작을 거부했다. 영화사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불법복제였다. 적절한 복제방지 장치가 없으면 DVD는 불법복제자들에게 완벽한 디지털 영화복제 수단을 제공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디즈니와 폭스에서 중역으로 근무하면서 DVD 도입에 반대했던 빌 미캐닉은 “리버파브는 냅스터의 등장으로 큰 타격을 입은 음반업계와 마찬가지 지경에 영화업계를 빠뜨리려 했다”고 말했다.

일부 영화사는 아예 DVD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당시에는 비디오카세트가 호황을 누렸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그것에 만족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어느날 리버파브는 잭 밸런티 전미영화협회 회장에게 “좀 도와달라. 다른 영화제작사들도 DVD 타이틀을 내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다른 요인도 있었다. 영화사 서로 간의 의심과 질투심이었다. 디즈니에서 중역을 맡았던 한 인사는 “DVD는 다른 사람이 개발한 기술이며 특허권도 다른 사람이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워너 브러더스는 DVD 기술에 대한 여러 특허권을 갖고 있다. 라이벌 회사들은 워너 브러더스에 디스크 1개당 현재 받는 약 4센트의 특허권료 지불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워너의 DVD 연합은 복제를 완전히 방지할 수는 없다고 해도 어느 정도 방지가 가능한 장치를 갖추게 됐다. 그 안전장치에다 리버파브의 불굴의 의지와 타협수완이 한데 어우러져 결국 모든 영화사가 DVD를 수용하게 됐다.

수익성 높은 신기술이 다 그렇듯이 곧 DVD를 둘러싸고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다. 할리우드는 DVD 가격 전략을 두고 양분됐다. 홈비디오 산업에서는 영화제작사들이 영화를 배급하는 시스템이 두단계로 나눠져 있다. 첫 몇달 동안은 비디오카세트의 가격이 약 70달러선이며 소비자에 대한 판매가 아니라 임대용도로만 출시됐다가 초기의 비디오 임대 열기가 가라앉은 다음에는 가격을 20달러선으로 하향조정한다.

그러나 워너 브러더스는 그 모델을 바꾸려 했다. DVD를 출시 순간부터 ‘소비자들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가격으로 내놓는다는 것이다. 그 전략으로 AOL 타임워너는 바이어컴의 블록버스터와 정면 충돌했다. 블록버스터 자체도 DVD의 인기를 수용하기 위해 소매전략을 바꾸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문제도 있다. 미국의 홈비디오 업계가 DVD의 저가 전략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있는 가운데 마리오 몬티 유럽연합(EU) 반독점담당 집행위원은 할리우드가 DVD 가격을 인위적으로 높게 설정하지 않았는지 조사하고 있다.

이제 DVD에 대한 저항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영화사들은 오히려 더 많은 수익을 위해 DVD를 더욱 정교하며 재미있게 쌍방향으로 만드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뉴라인은 ‘영화를 뛰어 넘는 체험’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삭제된 장면, 감독의 논평, 예고편 등 대다수 DVD에서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더 많은 흥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D-13’(13 Days)의 DVD에는 쿠바 미사일 위기의 실제 자료 필름과 신세대들에게 냉전을 소개하는 팝업 메뉴가 들어 있다. 드림웍스는 올해 미국에서 수익성 기록을 세운 영화 ‘슈렉’을 올 가을 DVD로 출시해 다시 한번 돌풍을 일으킬 계획이다. 거기에는 새로 제작한 15분짜리 끝부분 외에도 시청자들이 배우 목소리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더빙해 넣을 수 있도록 한 가라오케식 프로그램도 처음으로 도입된다. 드림웍스의 판매담당자들은 “시청자가 배우가 되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제 디즈니도 ‘백설공주’에 그런 방식을 도입할지 모른다.
With N''Gai Croal

Johnnie L. Robert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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