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살림집이 예술이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서울 방배동 정우네는 아이들이 놀러오면 화장실부터 찾아가는 집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화가 박미나씨 손이 마술사처럼 욕실을 지나가고 나서 가족이건 손님이건 볼일을 보고 나온 이들은 상쾌한 기분이 돼 한마디씩 한다. 알록달록한 동그라미들이 물방울이나 비누방울처럼 둥둥 떠가는 벽 한쪽에는 좌변기에 앉은 아이 모습이 앙증맞게 그려져 있어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화가들이 꾸미는 '그림이 있는 집' 프로젝트가 고객과 작가 모두가 만족하는 미술계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값비싼 작품을 사기엔 여유가 없는 고객, 분신 같은 작품을 더 널리 보여주고 작업을 위한 밑천을 마련해야 하는 작가 모두에게 이 프로젝트가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셈이다. 미술시장이 불황으로 얼어붙은 요즈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이~' 프로젝트를 개발한 ㈜서울옥션 김순응(50) 대표 생각도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목돈을 들여야 하는 미술품 구입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적은 비용으로 자신들 취향에 맞는 아름다운 집을 꾸밀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그림만 그리면서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으면 하는 전업작가들에게는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통로가 '그림이~'였다.

동물 그림을 잘 그리는 사석원씨의 붓이 지나간 거실 벽에는 힘차게 푸드덕거리는 수탉 한 마리가 태어났다. 격자무늬 패턴의 의자로 화면을 구성하는 손진아씨는 그림 그대로를 방 한 면에 떠냈다. 이정승원씨가 여러 가지 그릇 그림들로 꾸민 주방 벽면은 누구나 와서 요리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림이~' 프로젝트는 1천여 점의 미술품 자료목록을 갖춘 서울옥션이 고객이 원하는 작품을 장소에 어울리게 설치해 주는 맞춤식 컨설팅이다. 전문 미술 교육을 받은 아트 컨설턴트가 무료로 상담을 해줘 그림을 집에 들여놓는 일을 망설이던 사람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비용은 20만~30만원 대에서 시작해 다양하다. 설치 작품에 대해서는 보증서를 주고, 가족들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기를 원할 때는 1회에 한해 작품 교체도 가능하다.

김 대표는 "경매를 진행하면서 한국 미술시장의 그림값이 거품이 많고, 구매하려는 사람들에게 화랑 문턱이 높아 진심으로 그림 한 점을 집에 걸고 싶어하는 평범한 미술애호가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그 타개책의 하나로 기획한 것이 이 '그림이~'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폐쇄적인 한국 미술시장을 다각화하는 한 활로가 돼 작가들이 작품을 파는 길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일깨워주고, 그런 여러 방법을 개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2-395-0330.

정재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