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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엽기적 연속 흥행성공'

중앙일보

입력

한국영화가 3연타석 홈런을 치다니…. '쉬리' (1999) '공동경비구역 JSA' (2000) '친구' (2001) 의 연이은 선전에 놀랐던 평론가마저 이젠 입을 떡 벌릴 정도다. 1년에 한편이 아닌 수편의 초특급 '대박' 이 나올 만큼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이다. 올 흥행작 세 편의 성공 포인트를 통해 한국영화의 앞날을 짚어본다.

◇ 우리 정서를 찾아라〓한국 영화계의 실력자인 강우석 감독은 동시대의 감수성 발굴을 흥행의 첫째 조건으로 꼽는다.

'엽기적인…' 을 제작한 신철 대표도 "미국.일본에선 결코 만들 수 없는 작품들이다" 고 말한다. 중장년층 교복세대의 향수를 자극한 '친구' , 수학여행의 정서를 간직한 30대를 노린 '신라의…' , 요즘 신세대들의 여고남저(女高男低) 현상을 건드린 '엽기적인…' 모두 바로 '지금 여기' 의 분위기를 대변한다는 것. 작품마다 공략하려는 연령층이 달랐지만 그같은 동시대성이 다른 세대까지 전염되며 폭발적 인기를 끈 것으로 분석한다.

영화계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의 차원을 넘어 현대인의 심리적 공약수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번역소설과 팝송이 쑥 들어간 문학.가요처럼 영화에도 한국형 정서가 키워드로 부상한 것. 남북문제를 다룬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처럼 소재 제한이 풀린 것도 긍정적 요소다.

화면 연출력.작품 완성도에선 뛰어난 평가를 받았음에도 대중들은 열광하지 않았던 '순애보' '파이란' 등이 이런 세태를 반증한다. 각각 일본( '순애보' ) 과 홍콩( '파이란' ) 의 스타를 기용했음에도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란 비현실적 주제가 먹혀들지 않았다.

◇ 무엇보다 재미가 우선〓대중들이 영화 선택의 주인으로 당당히 올라섰다. 전문가들의 별점과 대중의 취향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생겼다. 그만큼 재미를 앞세운 영화, 통쾌함을 선물하는 작품들이 흥행의 앞줄에 서는 시대가 됐다. 사실 '친구' '신라의…' '엽기적…' 은 평론가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개인이나 사회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고 흥미 본위의 화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흡입력은 대단하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뻔한 얘기인 줄 알면서도 두 번이나 볼 만큼 '엽기적인…' 은 재미있다 "고 말했다. 대중영화와 예술영화를 동일한 잣대로 판단해선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조희문(상명대) 교수는 " '쉬리' 이전에만 해도 한국영화 제작자와 관객들은 스크린 속에서 무언가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며 "지금은 영화의 사회적 기능보다 오락적 효용성을 앞세우고 있다" 고 설명했다.

요즘의 흥행작들은 감독의 색깔보다 영화사의 기획력에 의존한다는 것. "예술영화들이 죽는 것이 아닌가" 라는 물음에 조교수는 "영화시장 자체가 커지다 보면 다양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고 응답했다.

◇ 연기는 역시 앙상블〓올 히트작 세 편에선 주.조연들의 호흡이 뛰어났다. 한 두 명 스타의 카리스마보다 영화 전체의 연기력이 위력을 발휘했다.

유오성.장동건.서태화.정운택 네 명의 조화가 훌륭했던 '친구' 는 말할 것 없고 차승원.이성재.김혜수라는 스타를 앞세운 '신라의…' 의 일등공신이 조연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연들을 작품 전체의 활기를 살리는 지렛대로 활용한 것이다. 단순한 양념거리 차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마천수(경주 토착깡패) .성지루(차승원의 친구) .이종수(고교생 '짱' ) 등의 익살 맞은 연기가 영화를 떠받쳤다.

'엽기적…' 의 전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지현.차태현이라는 '덜 익은' 신세대 최고 스타들도 제몫을 충분히 했지만 김인문.송옥숙.한진희.김일우(순서대로 차태현과 전지현의 부모) 등 중견급 연기자의 코믹한 연기가 빛을 발했다.

또 이들 영화들은 긴장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식의 리듬감을 살리는 데 성공해 관객들이 상영 기간에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게 하는 등 대중영화의 요건을 고루 갖춘 것으로 판단된다.

'싸이렌' '단적비연수' '천사몽' 등 소위 한국형 블록버스트터를 표방했던 작품들보다 기본기가 단단한 '중간급' 영화들이 주목받았다는 점에서 시사성이 크다.

◇ 계속될 배급력 싸움〓영화시장 측면에서 볼 때 최근 한국영화의 승리는 급속하게 성장한 배급력 덕분이다.

작품 규모.완성도를 놓고 볼 때 할리우드 영화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싹' 이 보이는 한국 작품은 과감하게 밀어주는 배급사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전혀 부럽지 않을 만큼 많은 스크린을 선점할 수 있었다.

한국 영화의 약진에 놀란 외국 직배사들도 한국영화의 배급에 하나둘씩 참여하고 있다. 때로는 한국영화의 눈치를 보며 상영일정을 조절할 정도다.

한국영화 열기는 가을 바람이 불어도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사'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봄날은 간다' '피도 눈물도 없이' 등 기대작이 줄줄이 개봉하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은 올해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를 넉넉하게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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