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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강국 프랑스의 비결은 ‘비판 정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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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호 03면

프랑스가 받은 노벨상 내역을 살펴보면 프랑스가 문화 강국이자 과학 강국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과학과 문화의 역량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본받을 만한 나라다. 프랑스가 받은 65개 노벨상 중에서 29개는 ‘넓은 의미의’ 문화(문학·평화·경제), 36개는 과학(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영역에서 나왔다.
과학 강국 프랑스의 비결은 무엇일까. 프랑스 과학계의 거물인 물리학자 카트린 브레시냑(66·사진)은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1666년 설립된, 그야말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과학원의 종신 사무총장이다. 국제과학협의회(ICSU)의 전임 의장이기도 한 그가 1일 한국에서 개최된 ‘세계 과학한림원 서울 포럼(IASSF)’에 참석했다. 미국·독일·프랑스 등 과학 강국의 과학원 대표들과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데 모인 과학 지도자들의 잔치였다. 브레시냑 사무총장을 1일 오후 중앙SUNDAY 회의실에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프랑스와 한국이 과학분야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과학은 지식(knowledge), 기술은 노하우(know-how)다. 과학과 기술의 관계는 이론과 실험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 오늘날 기술 없이 과학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랑스 사람들은 한국산 휴대전화가 상징하는 한국의 높은 기술 수준에 감탄한다.
프랑스는 대형 연구 시설의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자금과 경험이 있다. 장기적인 대형 연구를 위해서는 10~20년이 걸린다. 프랑스 과학은 장기·대형 연구를 잘한다. 고속철도 테제베(TGV) 또한 이런 연구 전통의 산물이다.
상대적으로 과학이 강한 프랑스와 기술이 강한 한국이 협력하면 세계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다. 멋진 일이 될 것이다. 이미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와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협력하고 있다. 또한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계속 노력하고 있다.”
 
한국 기술과 손잡으면 멋진 일 될 것
-한국에서도 파스퇴르, 퀴리 부인은 누구나 아는 이름이다. 요즘에는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프랑스의 과학이 20세기 초반에 비해 저하된 것은 아닌지.
“프랑스는 올해 세르주 아로슈가 노벨 물리학상을, 지난해에는 쥘 오프만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물론 분야에 따라 다르다. 수학의 경우에서도 프랑스는 일등, 인구비례를 고려하면 일등 중의 일등이다.”

佛 과학계 거물 카트린 브레시냑 프랑스과학원 사무총장

-과학 강국 프랑스의 비결은 과학 전통에서 나오는가.
“전통도 중요하지만 비결은 ‘비판 정신(esprit critique)’에 있다고 생각한다. 증명 없는 그 어떤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체질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좋아한다. 비판과 토론에 소요되는 시간 때문에 일이 늦어지더라도 말이다.”

-비판 정신이란 무엇인가.
“과학에서 비판 정신은 이론과 실험의 결과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좋은 과학 연구 방법이다. 과학에서는 항상 증명이 필요한데 증명은 이론과 실험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천재란 99%의 땀과 1%의 영감이다”라고 했다. 과학에도 통용될 수 있는 말인가.
“그렇게 퍼센트로 표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천재’나 ‘영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맞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천재도 무인도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 활동은 전 세계 차원의 과학 네트워크라는 환경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 분과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사고 방식을 교류하는 게 필요하다.

한편 과학에서도 정책결정이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하부에서 상부로(bottom-up) 전달되고 다시 상부에서 하부로(top-down) 내려오는 과정이 결합되는 정책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과학에 문학·사학·철학이 도움이 되는가.
“연구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역사 특히 과학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의 역사는 토론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도 기후변화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과학자들이 사회로부터 압력을 받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빨리 상용화될 수 있는 연구결과를 내놓으라는 압력 같은 것 말이다.
“프랑스의 경우 생명과학, 의학, 약학 분야는 압력을 받고 있지만 물리학·화학은 그렇지 않다. 점점 많은 사람이 과학기술의 발전이 낳을 결과를 두려워한다. 예컨대 프랑스에서 유전자변형작물(GMO)은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가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수용하지 못하면 그 기술은 사라지게 된다.”

-과학의 언어로서 프랑스어의 위상은.
“영어가 국제 과학계의 언어가 된 만큼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 그러나 생각은 각자의 언어로 하는 것이다. 언어에 따라 생각하는 법이 다르다. 일본인 과학자와 공동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 직선으로 생각하는 나와 달리 그의 사고법은 순환적(circular)이었다. 그러나 결국에 우리의 생각은 서로 만났다.”
 
과학은 어려서부터 실험을 통해 가르쳐야
-많은 국가가 과학교육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프랑스의 과학 교육은 아주 훌륭했었는데 잠시 수준이 낮아졌다가 다시 올라가고 있다. 어린이 과학교육은 실험을 통한 것이어야 하며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

-프랑스에서 과학자와 관료들 사이에 마찰은 없는가.
“세계 모든 나라에서 과학자와 관료의 마찰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미국 학자들의 경우에도 연구비를 받으려면 가용 시간의 40%를 할애해야 한다.”

-연구비를 준 다음에도 간섭하는가.
“연구비를 물론 제대로 써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다. 연구비를 받은 후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뭘 했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요구하는 일도 거의 없다.”

-프랑스에서 과학과 정치의 관계는?
“좌파·우파, 어느 쪽이 집권해도 과학 예산은 큰 변화가 없다. 정부에 따라 예산을 더 받기도, 약간 덜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프랑스의 정부나 사회는 과학연구를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정치인 중엔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많아 과학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래서 과학자들에게 물어보고 그들이 하는 말을 경청한다.”

-과학자로서 행정 일도 해야 되는데.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행정을 맡게 되면서 연구는 계속했지만 가르치는 걸중단했다. 두 가지는 모르지만 세 가지는 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정계 진출을 고려해 본 적이 있는지.
“나는 ‘진짜 과학자(real scientist)’다.”

-다시 태어나도 과학을 할 것인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전생의 기억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다시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면 다시 과학을 하겠다. 지식의 새로운 경계를 찾아나서는 데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제자들을 가르칠 때 늘 해주는 말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최선을 다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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