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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면 못 참아… 연구 또 연구하며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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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현(18·송파구 보성고3)군은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중학교 시절 강동교육청과 서울시에서 열린 학생탐구발표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는 전국과 세계로 무대를 넓혀 전국 과학전람회 대통령상, 인텔 국제 과학경진대회 2개 부문 특별상 등의 성과를 냈다. 그가 개발한 ‘P-팩터를 보정하는 장치’는 현재 특허 출원된 상태다. 고등학생이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그는 어렸을 때 별 다른 사교육도 안 받고 자랐다. 머리가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다. 단지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왜?’라는 호기심을 갖고, 집중해서 연구했을 뿐이다.

파일럿이 비행기에 올라탄다. 암흑 상태인 조종석에 하나 둘 불이 켜진다. 10개가 넘는 버튼을 차례로 입력하면 비행기가 서서히 이륙을 시작한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제주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비행경로를 만들어야 하고, 이·착륙 할 때는 고도제한도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하지만 추락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실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황군이 초등학교 때부터 즐겨했던 비행시뮬레이션 컴퓨터 게임 ‘플라이트 시뮬레이터(Flight Simulator)’ 이야기다.

“이 장치로 P-팩터 현상을 보정할 수 있습니다.” 황세현군이 자신의 개발품을 소개하고 있다

게임하다 ‘자이로효과’ 궁금해 공부 시작

황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수업 중에도 머릿속으로 비행경로를 그릴 정도로 가상 비행에 푹 빠져 있었다. 게임에 어느 정도 익숙해 진 뒤에는 가상 면허증 따기에 도전했다. 3개월에 거쳐 상업·여객기 등 5개 종류의 면허증을 모조리 취득해버렸다. 비행에 익숙해지자 항공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처음 생긴 궁금증은 ‘왜 조종사가 비행기 기수를 올리려 할 때 항공기는 오른쪽으로 가려고 할까?’였다.

단순한 호기심이 항공공학에 대한 연구로 이어진 건 중 3때. 여름방학 때 평소 관심 있었던 분야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제출하는 과제를 통해서다. 인터넷과 전문서적을 통해 자료를 찾았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연구가 바로 ‘자이로효과(Gyroscopic Properties)가 비행기의 운동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비행 시뮬레이션(FSX)과 세차운동의 크기를 측정하는 장치를 이용한 탐구’였다. A4용지 15쪽 짜리 보고서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단 이틀. 이 탐구과제는 예상외의 결과를 냈다. 황군이 교내대회에서 금상을 받게 된 것이다.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게이머였던 황군이 기계항공공학도로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그 후 황군은 같은 주제로 강동교육청 학생탐구발표대회와 서울시 학생탐구발표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타서 놀랐어요. 항공공학 분야를 더 연구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또 다른 궁금증이었던 P-팩터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할 마음을 먹은 이유다.

‘P-팩터 보정 장치’ 개발해 특허출원

P-팩터 현상도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하는 동안 황군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점 중 하나였다. 프로펠러 항공기는 조종사가 가만히 있어도 왼쪽으로 가려는 성질이 있었다. ‘왜?’라는 의문점이 떠오른 뒤에는 관련 자료를 찾는 게 순서. 하지만 P-팩터에 대한 선행연구가 거의 없었다. 파일럿들이 이 현상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어떤 요소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자료는 없었던 것이다. “P-팩터를 개선하기 위해 파일럿들은 수동으로 보정 작업을 해야 했어요. 사람이 가진 반응속도의 한계 때문에 추락사고가 나기도 했죠.” 정량적인 값이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어떤 조건에서 어느 정도 왼쪽으로 선회할 지 예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제가 한 번 그 값을 밝혀내고 싶었습니다.”

 황군은 우선 P-팩터에 영향을 미치는 8가지 조건을 파악했다. 프로펠러의 지름, 비행 속도, 공기 밀도 등이었다. 실험을 위해선 이론적인 값이 필요했지만, 프로펠러 항공기에 실제로 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P-팩터 회전력을 계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필요했다. 8가지 조건을 입력하면 항공기가 P-팩터에 의해 얼마만큼의 회전력을 받는 지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중학교 때 두 달 간 학원을 다니며 배워둔 프로그램 제작 기술과 학교에서 배운 수학·물리가 기본이 됐다. 처음에는 성공확률을 30% 이하로 판단했다. 오차가 크게 나서 아예 프로그램을 새로 만든 적도 있고, 항공기가 받는 힘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터무니없이 작은 숫자가 나와 헤매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소프트웨어가 완성됐지만, 마음을 놓기는 일렀다. 실제와 같은 값을 내야지만 과학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프로펠러가 하늘을 날 때와 같은 조건을 한 상태에서 풍동실험을 거쳤다. 실험 결과와 소프트웨어 데이터는 거의 비슷한 숫자를 나타냈다. “4개월 간 밤잠 안자고, 밥 먹을 시간 아껴가며 개발한 프로그램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어요.”

 프로그램을 개발한 뒤에는 ‘P-팩터를 보정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번에도 걸린 시간은 이틀이었다. P-팩터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측정하고, 이를 종합해 크기를 산출한 뒤, 보정 조작을 가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장치는 현재 특허 출원된 상태다.

 황군은 현재 서울대·고려대·한양대·포스텍·카이스트 등에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원서를 넣은 상태다. “어느 곳에 합격이 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항공관련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항공기나 우주선의 비행통제에 관심이 많거든요. 제 이름을 기억해 주세요. 우리나라가 다음에 우주선을 쏘아 올릴 때는 반드시 제가 통제시스템을 담당하고 있을 테니까요.”

글=전민희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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