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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부위원장 명함 수백 명 … ‘측근 마패’로 남용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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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누리당은 31일 ‘100% 대한민국 대통합위원회’ 위원 19명과 고문·자문위원 171명에게 임명장을 줬다. 민주통합당은 10월 28일 사물놀이 국악인 김덕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146명의 2차 특보단을 발표했다.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48일 남겨놓은 정치권에선 대규모 임명장 수여식과 조직 명단 발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치러지고 있다. ‘세 불리기’로 바닥표를 훑으려는 각 후보 캠프에서 경쟁적으로 사람을 끌어모으면서 나타나는 풍경이다. 각 캠프엔 임명장 작성을 전담하는 인력이 있을 정도다. 새누리당의 한 경북 지역 의원실 보좌관은 “의원실에서 3명이나 캠프에 보내 국정감사 때 힘들었다”며 “그들이 한 일은 고작 임명장 만드는 일이더라”고 말했다.

 각 캠프가 각계각층의 인사를 영입할 때마다 늘어나는 건 명함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중앙선대위에 이름을 올린 인사만 107명이 넘고, 직능본부와 국민소통본부 인원도 182명에 달한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에도 공동선대위원장 10명을 포함해 228명이 활동한다. 고문, 부위원장 같은 직책을 합하면 규모는 훨씬 커진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 캠프도 본부장 3명, 실장·팀장급 31명을 포함해 총 220명이 공식 직함을 갖고 있다.

 규모가 커진 각 캠프는 참여한 인사의 정확한 숫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문 후보 캠프 이기현 총무팀장은 “정무직의 숫자는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낯선 단체의 실체 모를 명함까지 합하면 캠프와 관련 있는 명함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현재 안 후보에게 자발적 조언을 하는 단체만 해도 5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각 당이 찍어준 명함에 가짜까지 합치면 대선 명함은 여의도 바닥을 덮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이준한(정치외교학) 인천대 교수는 “선거 때 한 표가 아쉬워 영입한 사람들에 대해 집권 후 논공행상을 해야 하는데, 그에 따른 부작용이 크다”며 “자기들끼리 경쟁과 갈등을 벌이면 (정권 차원의) 파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권력과 가까운 증표로 사용되는 캠프 명함은 선거 때마다 골칫거리가 되곤 했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멋대로 캠프 명함을 만든 사람 때문에 곤욕을 치른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을 치를 때 명함의 총량관리를 했다. 캠프 역할을 한 안국포럼의 영문 약자(AF)에 ‘AF-001’(이명박) 같은 식으로 일련번호를 새겨넣어 가짜와 진짜를 구분한 것이다.

 그러나 일련번호는 결국 ‘권력의 강도’를 보여주는 척도로 인식됐다. 당시 상위 번호의 명함을 쓰던 사람 중 상당수가 비리에 연루돼 감옥에 가거나 검찰 수사를 받았다.

 국민희망포럼(박근혜), 담쟁이포럼(문재인), 해피스(안철수) 등 후보의 이름을 앞세운 캠프 밖의 비공식 외곽 조직도 활동 중이다. 5년 전에도 이명박 후보의 대선 외곽 조직인 선진국민연대가 활동했었다. 이 조직은 이 대통령이 집권한 뒤 영포회로 바뀌며 국정 농단의 논란을 빚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2007년에 비해 각 캠프의 외곽 조직은 줄었지만 이들이 캠프로 흡수되다 보니 캠프의 명함 숫자는 더 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류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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