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11월에 문여는 야간 사이버 증시

중앙일보

입력

주부 김모(45.경기도 고양시)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 최근 남편이 직장을 그만둔 뒤 전업 주식투자자가 돼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멀지않아 야간에도 주식거래를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남편이 손해를 보면서도 주식매매를 계속하는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 며 "밤까지 그런 모습을 지켜볼 것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고 말했다.

국내 증시에도 이같은 '올빼미 투자자' 가 많이 생겨나게 됐다.

야간 주식거래를 위한 장외전자거래시장(Electronic Communication Network)이 오는 11월 개설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ECN의 필요성과 시장 시스템 등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 돛 올리는 ECN=금융감독위원회는 지난 4월 증권거래법을 고쳐 ECN 설립을 허가했다. 투자자가 야간에도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등 증시 활성화와 효율화를 꾀하자는 취지다.

이에 따라 28개 증권사가 공동 출자해 한국ECN㈜을 설립했고, 11월 중순부터 야간증시를 개장할 예정이다.

야간증시가 문을 열면 투자자들은 오후 4시부터 오후 9시까지 증권사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주문을 낼 수 있다.

이를 한국ECN이 취합해 거래를 성사시킨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 종목의 종가(終價)로만 거래되는 것 외에 장중 거래 시스템과 다를 게 없다.

이정범 한국ECN 사장은 "정부와 협의해 가격변동폭을 설정하고 거래시간도 점차 늘려 가겠다" 고 말했다.

지난달 바뀐 증권거래법 시행령 상 ECN은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운영이 가능하다. 이 경우 미국 증시와의 연동화 현상이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미국 증시의 동향에 민감한 국내 투자자들이 나스닥 주가 움직임을 보며 그날 바로 국내 증시에 투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야간거래 과연 필요한가=ECN의 원조는 미국이다. 미국의 ECN은 딜러 중심으로 대량 거래가 이뤄지는 나스닥시장을 보완해, 완전 전산거래를 통해 소량 거래도 편리하게 맺어줌으로써 급속히 성장했다.

미국 ECN은 아울러 거래시간 제한도 두지 않는 24시간 매매 체제를 도입해 인기를 더했다. 애당초 야간거래를 위한 시장은 아니었다.

이에 비해 한국과 같이 야간거래만을 위한 ECN을 설립한 일본은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다.

김종민 국민대 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인 개인거래 비중과 사이버거래 행태에 비춰볼 때 야간거래는 빠르게 확산될 것" 이라며 "재충전을 위한 휴식시간을 빼앗는 등 심각한 사회.경제 문제가 될 수 있다" 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ECN측은 "장 마감 이후 발표되는 공시나 여러 재료를 즉각 반영해 오히려 시장에 순기능적 역할을 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 중복투자 우려=야간시장을 열더라도 과연 별도 중개기관을 두고 막대한 전산투자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완선 수원대 교수는 "기관.법인 등의 대규모 시간외 매매가 필요하다면 기존 시장의 가동시간을 연장하면 그만이지 2백억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비슷한 시스템을 또 만드는 것은 국가적 낭비" 라고 꼬집었다.

ING베어링증권 박종만 전무는 "야간시장이 공익적 자율 규제기관이 아닌 사설 증권회사의 형태를 띠게 된 것도 문제" 라며 "증권회사의 위상으로 결제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불공정거래를 차단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김광기.김현기 기자 kikw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