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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월드컵 성공을 가꾸는 사람들(16)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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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6강은 선수들의 몫이지만 화장실만큼은일본에 질 수 없다는 각오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월드컵 성공을 가꾸는 사람이 있다.

표혜령(51) 화장실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이 그 주인공. 99년 12월13일 출범한 화장실연대의 `플레잉 감독'으로서 하루하루를 음지에서일하며 양지를 꿈꾸고 있다.

"월드컵같은 국제대회 때 외국인이 가장 빠르고 쉽게 접근하는 곳이 바로 화장실입니다. 더구나 2002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의 공동 개최라서 외국인들이 화장실로두 나라 문화수준을 가늠하려 들겠지요." 표 국장은 "우리 화장실 문제가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내년 월드컵 때 한국을 찾을 외국인들을 떠올리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국내 화장실 문제에 관한 한 `1인자'로 통하기 전에는 잘 나가던 시민 운동가였다.

울산 YMCA 시민중계실장과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 고발상담실장으로서 명성을 쌓은 표 국장은 잠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침안뱉기운동'을 벌이다 운명처럼 `화장실'과 인연을 맺게 됐다.

99년 4월 녹색소비자연대 이사회에서 침안뱉기캠페인을 제안했다가 `월드컵을앞두고 화장실 문제와 접목시키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에 귀가 솔깃해져 내친 김에 `더러운 곳'으로 뛰어들었다.

녹색연대 화장실실태조사단장을 맡은 그는 50명의 `정예' 공공근로요원을 서울지역 4천800곳의 화장실에 투입해 방대한 자료를 축적한 뒤 이를 바탕으로 `5불(不)캠페인'을 펼치며 `화장실 대모'로서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다.

5불은 불편 불량 불안 불견 불쾌를 뜻하는 말. 표 국장은 "여론조사에서 87%가 매우 더럽다고 답해 충격을 받았다"며 "월드컵을 앞두고 누군가 해야할 것 같아 결국 화장실에 `미치게' 됐다"고 말했다.

표 국장의 지휘 아래 벌어진 화장실연대의 청결 운동은 화장실 문제에 대해 공감은 하지만 선뜻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했던 대중 속에서 커다란 호응을 이끌어냈다.

2000년 1월 개설된 화장실연대 고발센터(02-752-4242)를 통해 지난해 593건, 올해 7월 현재까지 109건의 고발이 접수되고 9월에는 공중화장실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화장실연대가 출범할 당시에는 "그런 시민단체도 있느냐" "시민단체의 격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주류를 이뤘으나 이제는 전국 등록회원 500명이 `화장실의 날'로 지정된 매월 13일 `더러운 화장실 소탕 작전'에 출동할 만큼 영향력 있는 단체로급성장했다.

이 작전은 지하철역과 공원 등 1천명 이상 사용하는 대중화장실이 타깃인데 월드컵이 1년 남짓 앞둔 요즘 축구장도 주요 목표물이 됐다.

다만 화장실연대가 월드컵을 맞아 중점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잠긴 화장실문 열기 운동'이 지역적으로 호응도가 고르지 못한 것이 표 국장의 고민이다.

업주들이 청소하기 귀찮고 화장실연대와 소속 구청에 고발(?)될 것까지 우려한때문인지 좀처럼 화장실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 화장실연대에 따르면 이태원이 외국인을 위해 화장실을 개방하는 곳이 가장 많은 반면 최근 해외 관람객이 꼭 찾는 명소가 된 인사동은 내국인조차 급한 통에 화장실을 못 찾아 애가 탈 만큼 가장 폐쇄적인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표 국장은 "화장실은 사람의 쓰다남은 에너지원을 받아주는 소중한 곳"이라며 "월드컵을 맞아 외국인같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1등 국민이 될 수 있도록 더욱 가열찬 캠페인을 벌여 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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