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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문화인] 오영식 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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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불암통신(佛巖通信)'이란 잡지가 있다. 고문서 자료를 소개하는 일종의 서지학(書誌學) 잡지다.

통권 10호까지 나온, 순전히 개인의 힘으로 발행하는 이 조그만 책자가 한국학 연구자 사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14년째 혼자 이 일을 해내고 있는 인물이 서울 보성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오영식(49)교사다.

대학시절인 1975년부터 고문서를 수집하기 시작해 올해로 28년째다. 자료 수집을 넘어 그것을 정리해 공개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불암통신'은 최근 민족시인 이육사의 미공개 시 3편과 동인지 성격의 최초 문예지 '신청년(新靑年)'을 발굴해 알림으로써 더욱 화제가 됐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보성고등학교 도서관. 그는 도서관 사서를 겸하고 있었다. 방학이라 텅 빈 교정과 그의 책상은 대조를 이뤘다. 여느 고등학교 도서관에선 잘 볼 수 없을 희귀 자료가 수북이 쌓여 있다.

방학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 수집은 학기 중에도 할 수 있지만, 자료를 정리해 '불암통신'에 공개하는 일은 방학 중에 이뤄진다. '불암'이란 말은 '불암통신'을 시작할 무렵 살던 서울 상계동의 불암산에서 따왔다.

"자료를 찾는다는 것은 학문의 기초입니다. 치열한 서지학적 작업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학사(學史)를 논할 자격이 없어요. 자료의 수집과 정리라는 기초적인 작업에 소홀했던 한국학계의 현실을 '불암통신'의 조그만 목소리는 고발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인류학과 전경수 교수가 '불암통신' 10호 발행을 축하하며 오교사가 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지적한 말이다. 전교수는 "7년 전 '한국인류학 백년'의 집필을 위한 자료수집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오선생과 만날 수밖에 없었고, 오선생의 도움이 그 작업을 완성시키는 데 절대적이었다"고 증언한다.

전교수 외에도 '불암통신'을 받아 보는 연구자가 많다.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와 신용하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비롯해 최근 '문예지 '신청년'의 의의'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 주목받은 한기형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도 애독자다. 미국 워싱턴대학의 동아시아연구소는 수차례 편지를 보내 '불암통신'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자료는 공유돼야 합니다. 개인이 갖고 있다 사장되는 경우가 많아요. 정보의 교환을 활성화시키고 싶었습니다." 오교사가 1989년부터 '불암통신'을 발행하게 된 동기다. 이 때는 그가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수여하는 '모범장서가상'을 수상한 직후다.

그 무렵부터 자료 속에 자신의 도장을 찍는 일을 중단했고, 자료 속에 볼펜으로 기록했던 책에 대한 분류기준도 연필로 적기 시작했다. 고서 수집가로도 유명했던 육당 최남선의 수필 중에서 "책에 도장 찍지 말라. 죽고 나면 당신의 책이 아니다"라는 대목을 읽은 후 뭔가로 한 대 얻어맏은 듯한 경험을 하고 나서다.

그래서 그는 단순한 장서가가 아니라 연구자들의 학문적 동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애써 모은 자료를 연구자들에게 흔쾌히 전해주는 공공적 자세 때문이다.

연구자들만 도움을 얻는 것이 아니다. 월북한 문인 등 관련 자료를 찾지 못해 애타하는 근현대사 인물의 유족들에게 선친의 사진이나 자료를 전해주기도 한다. 현진건과 염상섭 같은 근대 문학의 거장들이 보성고등학교 출신임을 처음으로 밝혀내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희귀 자료 실물을 학생들에게 직접 보여주며 강의하는 일은 또 다른 보람이다.

추억이 돼버린 일화도 많다. "우리 아빠는 책 배달부예요."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딸이 초등학교 때 쓴 글짓기의 한 구절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결혼하기 전 "헌 책에서 벌레 나온다"고 나무라는 어머니 눈을 피해 고서 한보따리를 장독대에 숨겨놓았다가 비가 와서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소장 자료의 서지 정보를 일일이 손으로 적은 낡은 대학 노트를 보여주면서 오교사는 컴퓨터를 이용하고 부터 작업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자랑한다. 그의 올해 목표는 '불암통신'의 정보를 담을 홈페이지 개설. 더 많은 연구자가 더 수월하게 정보를 얻게 하려는 취지다.

그가 자료를 수집하는 곳은 전국에 산재한 헌책방이지만 특히 청계천 8가와 인사동 등이 주요 창구였다. 요즘엔 인터넷도 많이 이용한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와 인터넷 고서점이 그것이다.

그와 함께 서울 송파구의 한 고서점엘 직접 가봤다. 순식간에 잡지 '개벽' 한 권을 찾아 낸다. 어디에 무슨 책이 꽂혀 있는 줄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개벽'은 이미 여러권 소장하고 있지만 거기엔 특별히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실려 있었다.

점차 고문서 자료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책의 홍수 시대에 오히려 책이 제대로 평가를 못받는 것 같단다.

앞으로 그는 1945년에서 50년 한국전쟁 전까지 시기인 이른바 해방공간 에 관한 자료를 모으는 데 전력을 쏟겠다고 말한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이제 슬슬 해방공간의 문학 및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으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직접 연구성과를 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근대문학 자료관'을 세우는 데 일조하면 좋겠다고 그는 말할 뿐이다.

배영대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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