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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하나로 유럽 횡단 박대운씨 에세이 펴내

중앙일보

입력

"많은 비장애인들 앞에 발가벗은 내 몸을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수영장에 들어가면 동물원 원숭이가 될 것은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수영을 하겠다고 하자 주위에서 또 난리가 났다. 다리도 없는데 어떻게 수영을 하느냐며 극구 만류했다. … 제일 야한 수영복을 사 입고 체육관 3층의 수영장으로 갔다. "

휠체어를 타고 유럽 횡단과 우리 국토 종단에 성공했던 박대운(30.연세대 신방과4)씨가 최근 펴낸 에세이집 『내게 없는 것이 길이 된다』(북하우스.8천원)의 일부 내용이다.

두 다리가 없는 그는 휠체어를 타고 유럽 5개국 2천2㎞를 횡단(1998년)하고 한.일 국토 종단 4천㎞ 대장정(99년)을 펼쳐 IMF 사태로 실의에 빠져 있던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朴씨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애나 가난보다 어렸을 때 집을 떠난 아버지 때문에 더욱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었다" 며 "언젠가 내 아이가 이 책을 보면서 '아빠처럼 꿈을 오르며 희망에 도전하며 살아야지' 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고 말했다.

이 책은 그가 대구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사연으로 시작된다. 이어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려 초등학교 땐 야구선수, 중학교 땐 겁없는 강태공, 고등학교 땐 여학생 꼬시기의 달인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담았다.

또 장애 때문에 대학에 떨어졌다가 대구대 서양화과에 입학했지만 화실에 틀어박혀 있는 게 싫어서 다시 스물여섯 살 때 수능 공부를 시작해 연대에 입학한 과정 등을 꾸밈없는 필치로 풀어놓았다. 혼자서 두 형제를 키워오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깃들여 있다.

이 책을 쓰는 것도 그에겐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유럽과 일본 횡단 후 여러 출판사들이 대필이라도 해줄테니 당장 책을 내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 2년 만에 이 책을 완성했다.

"글을 못쓰는 대신 솔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밝히고 싶지 않았던 것들까지 비교적 다 털어놨어요. "

명절이나 집안에 큰 일이 있을 때만 찾아올 뿐 '작은집' 에서 사는 아버지 때문에 느꼈던 복잡한 감정이 그런 것이다. '나도 남들처럼 이성과 육체적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씻고 장애인의 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계기가 됐던 첫 성경험 등에 관한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도전을 계획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朴씨는 "우선 취직부터 해야죠" 라며 밝게 웃었다. 오는 8월 졸업하는 그는 적십자사 등 국제기구에서 일하면서 여행 등을 즐기며 살고 싶다고 했다.

김정수 기자 newsla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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