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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정치권’ 공방 … 문재인·안철수 정면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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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24일 정치쇄신안을 놓고 정면충돌했다. 전날 안 후보가 국회의원 정수(定數) 및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 중앙당 폐지를 요구한 데 대해 문 후보가 혹평하자 안 후보가 다시 받아치면서다.

 문 후보는 이날 기자들이 안 후보의 정치개혁안에 대한 입장을 묻자 “구체적 방안에 대해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면서 “바람직한 것인지, 우리 정치를 발전시키는 방안인지도 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는 “좀 더 깊은 고민이 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안 후보는 기자들이 이 같은 문 후보의 반응을 전하며 논평을 요구하자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정치권이 새겨들어야 한다”며 “국민과 정치권의 인식이 괴리돼 있다”고 반격했다. 그는 “그런 부분을 잘 새기시고 정치권이 솔선수범해 내려놓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안 후보는 앞서 서울 남산 청어람아카데미에서 열린 ‘청년알바 간담회’에선 “정치권부터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 분담, 기득권 포기를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 후보가 전날 제시한 의원 정수 문제 등에선 학계에서도 ‘반(反)정치’ 여론에 기댄 포퓰리즘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안 후보는 전날 “현행 의원 정수 300명을 200명으로 줄이면 예산 2000억~4000억원을 아낄 수 있다”고 했었다. 가상준(정치학) 단국대 교수는 “비용이 문제라면 독재를 하는 것만큼 저비용인 게 없다”며 “우리나라는 국가 규모에 비해 국회의원 수가 부족하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 평가”라고 지적했다.

 실제 2003년 명지대 김도종·김형준(정치학) 교수의 『국회의원 정수 산출을 위한 경험연구』 논문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인구와 국내총생산(GDP), 정부 예산, 공무원 수를 지표로 할 때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는 379명으로 추정됐다.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와 관련해 야권 성향의 조국(법학) 서울대 교수는 “보조금을 줄이면 (정치인들이) 토호들로부터 돈을 받는 부패 고리가 생길 수 있다”며 “정치개혁은 정치 ‘삭제’가 아닌 ‘정치 활성화’가 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윤종빈(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안 후보가 선거 구도를 ‘새 정치 대 옛 정치’로 짜기 위해 기성 정치권을 모두 ‘구악(舊惡)’으로 돌려놓고 있다”며 “당장 득표엔 도움이 되겠지만 정권을 잡고 나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 후보 측 ‘정치혁신포럼’ 내부에서도 이런 지적에 공감하는 여론이 있다. 포럼에 참여하는 한 대학교수는 “점진적인 개선안을 내놓은 교수들의 발언권이 다소 약해지고, 일부 교수가 안 후보의 귀를 붙잡기 위해 선정적인 안을 내놓고 있다”고 걱정했다.

 새누리당은 ‘문제는 실천’이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이상일 대변인은 “안 후보가 주장한 지역구 의원 축소, 중앙당 폐지 등은 이미 여러 번 나왔지만 번번이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실행되지 못한 내용들”이라며 “국회 의석이 한 석(송호창 의원)밖에 없는 안 후보가 무슨 힘으로 이를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 대변인은 “안 후보가 정당정치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어떤 정치를 할지 청사진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자 정치쇄신안을 급조한 모양인데, 안 후보가 아마추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실천 방안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도 “정치는 강의, 연구가 아닌 현실”이라며 “실험실 연구원 같은 안 후보에게 장래를 맡길 수 없다”고 야유했다.

 그러나 안 후보 측은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안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기득권의 반발은 예상했던 일”이라며 “국민과 기성 정치의 괴리를 다시 느꼈다”고 날을 세웠다. 민주통합당과 문 후보 측을 ‘기득권’의 한 축으로 본 셈이다. 이에 문 후보 측 진성준 대변인은 “안 후보 측의 정치혁신안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기득권 고수를 위한 반발’로 치부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야권 내부에선 안 후보의 이런 행보가 후보 단일화 논의에도 부담을 줄 거란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안 후보와 문 후보가 경쟁적으로 보다 센 정치쇄신안을 내놓다보면 간극이 크게 벌어질 수 있다”며 “나중에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한 출구전략을 짜는 데도 상당한 애를 먹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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