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 간 단일화 논의에 각 분야 사회단체들이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두 후보가 ‘국민’의 이름으로 단일화 논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자락을 깔아주려는 것이다.
문화계와 영화계·미술계·종교계·학계 인사 48명은 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개혁과 단일화가 곧 민주주의이자 시대정신”이라며 “후보 단일화 실패로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발전 수준을 심각하게 후퇴시켰던 1987년의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87년의 실패란 야권 김영삼(민주당)-김대중(평민당) 후보 간 단일화 실패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걸 말한다.
회견에는 소설가 황석영·김연수씨, 영화감독 정지영·송해성씨, 화가 임옥상씨, 지관 스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문 후보에게 “선대위의 뒷전에서 여전히 낡은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면 민주당의 개혁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안 후보에겐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언급만이 아니라 정치개혁의 구체적 청사진과 방도를 제시하라”고 압박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등 범야권 원로들로 구성된 ‘희망2013승리2012 원탁회의’도 조만간 두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한다.
문 후보 측에 비해 단일화에 소극적이었던 안 후보 측의 기류도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다.
안 후보 캠프의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민이 단일화 과정을 만들어 주면 그에 따르고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태섭 상황실장은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해 “단일화 과정이 마련된다면 (단일화) 방법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 본부장은 기자들이 “문화예술계 및 학계 인사들이 후보 단일화를 촉구한 걸 국민의 단일화 바람으로 볼 수 있느냐”고 묻자 “넓은 의미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좀 더 광범한 국민의 의견을 들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단일화 가능성을 닫아놓지는 않되 아직도 서두를 단계는 아니라는 생각인 것 같다. 세력에서 열세인 무소속 후보로선 1~2주 정도는 더 지지율 격차를 벌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생각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안 후보 캠프 관계자는 “안 후보가 최근 회의에서 ‘10월 말께 되면 문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문 후보는 상대적으로 서두르는 인상이다. 문 후보는 전날 호남 의원들과의 만찬에서도 “단일화가 쉬운 일이 아니다. 본선보다 단일화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 후보 핵심 측근은 “단일화가 성사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안 후보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게 쉽지 않으니 긴장해 달라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 측 우상호 공보단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번 주부터 실제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라며 “문 후보의 지지율 정체 현상이 마무리되고, 10월 말과 11월 초 판이 출렁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단일화는 말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 오가는 식으로 진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협상창구가 가동될 것이란 얘기다.
문 후보는 이날 구체적인 ‘정치개혁안’도 제시했다. 전날 친노계 측근 9인의 퇴진으로 인적 쇄신 문제는 정리했다고 보고 다음 단계로 논의를 진전시킨 셈이다. 개혁안의 핵심은 ‘기득권 포기’에 맞춰졌다. 안 후보 측이 요구해온 사항이기도 하다. 문 후보는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지역구 의석을 200석으로 축소하고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으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등이 포함됐다. 문 후보는 “비례대표를 포함한 공직후보 공천권을 국민에게 완전히 돌려주겠다”고도 했다. “선거 때 급하게 꾸려지는 공천심사위원회 방식으론 한계가 있었고 국민경선과 모바일 투표도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서다. 구체적인 안은 전날 구성한 ‘새로운 정치위원회’가 마련하는 것으로 몫을 남겨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