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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그런데 이 펀드, 빵빵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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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투자신탁운용의 대표 펀드는 ‘네비게이터’다. 약 1조9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펀드다. 신한은행을 비롯해 50곳의 금융회사가 창구에서 이 펀드를 판다. 한투운용의 주식형 펀드에 투자한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이 펀드 가입자다.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1~3년 수익률이 꾸준히 상위 30%대에 드는 등 성과도 어느 정도 검증된, 입소문난 펀드다. 광고에도 자주 등장해 펀드 이름도 익숙하다. 이 펀드는 최근 1년 3.67%의 수익률을 올렸다. 3년 수익률은 19.72%, 5년은 13.74%다.

 하지만 대표 펀드가 최고 펀드는 아니다. 한국운용 최고 펀드는 ‘마이스터’다. 이 펀드의 최근 1년 수익률은 10.8%, 3년 28.4%, 5년 23.19%다. 이 회사 간판 펀드보다 낫다. 1999년 설정돼 열 살이 넘은 장수 펀드다. 1, 3, 5년 수익률이 꾸준히 상위 10%에 들었고 2007년 이후 매년 코스피지수보다 높은 수익을 냈다. 성과가 얼마나 안정적인지를 나타내는 표준편차도 최상위권이다. 연간 수수료도 1.519%로 간판 펀드보다 약 0.2%포인트 싸다. 수익률은 높고 수수료는 싼 좋은 펀드지만 규모는 890억원. 2조원짜리 네비게이터에 비하면 초소형이다. 성과가 뛰어난데도 이 펀드에 돈이 적게 들어온 이유는 수익은 꾸준하지만 증시가 급등할 때는 상대적으로 성과가 뒤처지기 때문이다. 판매 은행·증권사도 30곳으로 간판 펀드보다 더 적다. 한투운용 관계자는 “증시가 한창 오를 때는 이 펀드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적어 보여 인기가 덜하다”고 말했다.

 보통의 쇼핑법으로는 찾기 어려운 이런 펀드가 있다. 바로 ‘숨은 진주’ 펀드다. 이런 펀드를 고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판매창구를 찾아가는 건 정답이 아니다. 판매창구에서는 대개 계열사 펀드, 또는 요즘 성과가 괜찮다는 운용사의 간판 펀드를 권한다. 이런 방법으로 펀드를 고르면 비슷비슷한 펀드 중 하나를 ‘오지선다형’처럼 찍게 된다. 실제로 지난 10월 16일 서울 명동의 A증권사 지점을 방문했다. 은행 계열인 이 증권사 창구에는 ‘이달의 추천 상품’ 브로셔가 놓여 있었다. 여기엔 KB운용의 ‘중소형 포커스펀드’와 한국운용의 ‘네비게이터’ 펀드가 나와 있다. 상담 직원은 “규모도 크고 제일 무난해서 덜 불안하다”고 말했다. 인근의 다른 대형 B증권사 지점에서도 비슷했다. 요즘 수익률 좋다고 신문에 자주 광고가 나오는 대형 운용사 펀드를 권했다.

 다른 방법을 써봤다. 펀드평가사 제로인과 함께 ‘덜 유명하지만 괜찮은’ 펀드를 고르는 세 가지 기준을 골라봤다. 독립운용사 펀드, 대형운용사의 소규모 펀드, 혼합형 펀드 중 성과가 탁월한 펀드다. 독립운용사는 계열 그룹이 없거나 금융지주사 소속이 아닌 운용사를 말한다. 계열 증권사나 은행이 있으면 펀드도 밀어준다. 상대적으로 펀드를 알리기도, 팔기도 쉽다. 반면에 기댈 곳 없는 운용사는 펀드를 알리기도, 팔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규모도 작은 편이다. 독립운용사는 꾸준한 수익률로 평가받을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과에 더 신경을 쓴다. 독립운용사인 트러스톤 자산운용의 황성택 사장은 “고유한 철학과 운용 스타일을 지켜낼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독립운용사 주식형 펀드(인덱스형은 제외) 중 중기 수익률(3년)은 마이애셋운용의 ‘마이트리플스타’가 독보적이었다. 이 기간 수익률이 50%가 넘었다. 저평가된 주식을 골라 장기 투자하는 가치형 스타일의 펀드가 대부분 성과가 좋았다. SEI에셋운용의 ‘세이가치형’(3년 수익률 38%), 에셋플러스운용의 ‘코리아리치투게더’(35%), 신영운용의 ‘주니어경제박사’(32%), 트러스톤의 ‘칭기스칸’(29%) 등도 수익률이 높았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16% 상승했다.

 한국운용의 ‘마이스터’처럼 계열사가 있는 대형 운용사 또는 유명한 외국계 운용사 펀드로 덩치가 작은 것 중 뛰어난 펀드도 있다. 펀드 덩치가 작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장기 수익률은 좋지만 몇 개월만 잘라 보면 상위권에 들지 못하는 스타일인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 중소형주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의 경우 규모가 커지면 운용이 어려워 의도적으로 설정액을 작게 가져가기도 한다. 계열 운용사의 1000억원 미만 펀드 중에는 교보악사의 ‘위대한 중소형 밸류’가 3년 수익률 82%로 가장 탁월했다.

 흔히 펀드 시장에서 ‘주변부’ 취급을 받지만 은근히 성과가 좋은 펀드가 또 있다. 혼합형 펀드다. 주식과 채권을 평균 60대 40, 또는 그 반대로 편입하는 주식(채권) 혼합형 펀드는 인기가 높지 않다. 주식시장이 좋을 때 부각되지 못하는 등 이도 저도 아닌 펀드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장기 성과를 보면 무시 못할 혼합형 펀드가 많다. 최근 1년간 코스피지수는 4.9% 올랐고, 국내 주식형 펀드는 평균 2.9%의 수익을 올렸다. 주식혼합형 펀드의 1년 평균 수익률은 2.96%였다. 하지만 3년을 보면 12.48%, 5년 동안은 10.36%의 수익을 올렸다. 같은 기간 국내주식형은 평균 14.08%, 5년 -3.99%였다.

 혼합형 펀드는 주식과 채권의 정해진 비중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따라 저절로 투자 비중이 조절되는 ‘자동 조절 기능’이 있다. 주가가 많이 오르면 주식을 팔아 채권을 사야 한다. 쌀 데 사서 비쌀 때 파는 ‘저점 매수 고점 매도’가 저절로 이뤄지는 셈이다. 한국밸류운용의 10년 투자 채권혼합형 펀드와 트러스톤운용의 다이나믹코리아50주식혼합형은 1년 수익률이 각각 11.42%, 9.88%를 기록했다. 여느 잘 나가는 대형 주식펀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전무는 “위험은 주식형 펀드의 절반에, 매년 복리로 10% 넘는 수익이 나는 투자자산은 요즘 흔치 않다”며 “경제성장률이 낮아질수록 혼합형 펀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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