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의식한 구호 남발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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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역대 대통령들은 당대(當代)에 나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나라를 새로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경우가 많았다. 의욕이 넘쳐 힘이 들어간 것이다.

취임 초엔 지나치게 기대수준을 높이거나 부풀린 구호를 내걸었고, 임기 중엔 새로운 구호를 남발했다.

초기엔 욕심을 냈고, 중간엔 총선 등을 의식해 또 뭔가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 것이다. 그러니 집권 초기의 인기는 높아도 곧 지지도가 내려갔다.

개헌을 하기 전엔 어차피 단임(單任)이니 '퇴임 이후'를 생각하지 말아야 과욕에 빠지지 않고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취임 초기에 높아지기 쉬운 기대수준을 관리하고 조절할 필요가 있다.

1백대.2백대 하는 식으로 과제를 선정하고 다 챙기려다보니 정신만 없었다. 그 대부분의 과제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직접 챙길 것이 아니라 각 부처가 맡아서 할 일이었다.

대통령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5년 임기 안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서너 개의 과제를 선택한 뒤 일관성 있게 밀어붙이기를 권한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서도 그렇고, 국가 장래를 위해서도 그렇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과제가 적다고 인기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과 철학을 같이하며 함께 갈 장관들을 임명하고 일을 맡겨야 대통령 본인의 어젠다 몇 개를 선택하고 그것에 집중할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또 과거를 부정하고 단절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과거를 부정하고 단절하는 순간, 할 일은 너무 많아지고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게 제한된다. 5년에 모든 것을 다 새로 할 수 있는 대통령은 없다.

과거에 대한 부정.단절보다는 오히려 과거로부터의 연속성에 바탕을 둘 필요가 있다. 과거를 딛고 벽돌을 쌓듯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택할 서너 개 과제의 비전은 간단하고 명료할수록 좋다. 실행 가능하고 기준이 분명한 것을 정해 임기 내내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극단적으로는 하나의 과제만 정해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선진국 진입의 틀을 놓는 것 하나만 하려고 해도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대통령 본인이 잘 모른 채 밑에서 아무리 과제를 준비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제시할 핵심 과제는 대통령이 직접 토의하고 참여해 완전히 '대통령 본인의 것'이 돼있어야 한다. 누구와 만나더라도 확신을 갖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의 핵심 과제에 대해서는 다른 누구 아닌 대통령 본인이 직접, 자주 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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