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흑인문학의 대모 토니 모리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856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마거릿 가너란흑인 여성이 노예사냥꾼에게 자신의 아이를 빼앗기지 않기위해 그 아이를 칼로 목을 베어 죽인 사건이었다.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70) 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소설 『비러비드』(Beloved.1987) 를 썼고 '6천만명 이상' 이란 짤막한 헌사(獻詞) 로 노예선상이나 그 후 사망한 흑인들을 기렸다.

문자화한다는 자체가 불경스럽기만 해서 그 동안 유보돼왔던 노예제를 작품에 담은 후 모리슨은 역사의 짐에서 벗어났다.

『비러비드』의 영혼이 천도된 것처럼 '6천만명 이상' 의 흑인 영혼들이 천도된 것일까?

1993년 모리슨과 미 흑인들에게는 노벨상이 주어졌다.

그러나 『비러비드』가 영예의 면류관을 쓰게 된 것은 억압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폭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죽음과도 같은 노예선상의 실태, 선상 반란과 대학살, 치욕적인 성 착취, 노예 사냥꾼의 추적과 유아 살해, 원혼으로 들끓는 집들 등 굴욕의 세월을 담아낸 서사적이면서도 시적인 유려한 짜임이 역사와 미학의 접점을 가능하게 한 때문이다.

모리슨이 일궈낸 미학은 1983년 흑인 페미니스트인 넬리 맥케이와의 인터뷰에 함축되어 있다. "나는 제임스 조이스도 아니고 토마스 하디도 아니다. 물론 윌리엄 포크너도 아니다. 그렇게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작가들과 비교되는 데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그러나 내 작품이 음악 혹은 다른 문화 장르에서나 충분히 표현될 수 있는 그런 것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들과 다르다"

*** 소설에 차용한 '재즈의 미학'

아직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전 감히 자신과 서구 백인 대가들과의 차이를 논하던 모리슨은 자신이 차별화한 흑인 음악의 미학으로 세계 문학의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블루스.재즈.흑인 영가나 설교의 핵을 이루는 흑인 음악의 미학은 흑인 내부의 역동성에서 나온 '역겨운 혼돈성(dreadful funkiness) ' 의 표현이다.

서구 지배 담론이 대위법과 유기적 조화를 지향한다면 흑인 미학은 비대칭과 파열로 이루어져 있다. 때로는 난삽하고 때로는 미완성으로 보이는 흑인 음악의 미학을 모리슨이 전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흑인 문화 유산에 대한 깊은 자긍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31년 오하이오 로레인에서 출생한 모리슨은 인종차별과 빈곤 속에서도 흑인 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키워갈 수 있었다. 남부 조지아 출신인 아버지는 폭력적인 인종차별을 경험하면서 오히려 흑인의 우월성을 확신했다.

특히 모리슨이 두살 되던 해 백인이 저지른 방화로 가족 전원이 몰살당할뻔 했던 사건 이후로 아버지는 백인을 더욱 경멸했다.

일찍이 아버지가 일깨워준 인종적 자긍심은 흑인만이 입학하는 하워드 대학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또한 65년부터 랜덤 하우스 출판사의 편집 일을 맡으면서 모리슨은 흑인 문학과 문화에 대해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프린스턴대 창작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까지 모리슨은 이와 같은 흑인 우월 의식과 문화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흑인 문학을 실험하고 있다.

*** 고유문화.뿌리 향한 자긍심

모리슨 문학의 중심 화두는 인종적.문화적 정체성이다. 그것은 리처드 라이트.랠프 엘리슨.이시마엘 리드와 같은 미 흑인 작가 뿐 아니라 20세기 식민 구조를 경험한 아프리카의 월 소잉카.치누아 아체베 같은 작가들이 치열하게 탐색해온 화두이기도 하다.

미 대륙에서 혹은 아프리카와 영국을 유랑하며 그들이 지적 방황 끝에 찾아낸 공통된 해법은 역사의식과 고유문화 보존이다.

'국가적 기억 상실' 을 경고한 모리슨도 예외는 아니다. 미 역사의 지울 수 없는 오점인 노예제를 망각하는 것은 흑인의 의식을 분열시키고 증오를 키울 뿐 과거의 상흔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대신 역사를 직시함으로써 상처가 치유되며 그 결과 미래가 창조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역사의식이다.

『비러비드』의 주인공 세드가 유아살해의 죄책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은 은폐했던 기억과 직접 대면했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노래' (77) 에서 낙오자 밀크맨이 흑인 종족의 선지자로 거듭난 것은 묻혀있던 조상의 흔적을 캐어냈기 때문이다.

미 흑인의 역사가 노예제의 악몽으로 점철되어 있다 할지라도, 흑인 종족의 뿌리가 거세와 강탈로 얼룩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망각할 것이 아니라 복원시킬 때 흑인의 존재 가치는 회복된다는 것이 모리슨의 해법이다.

또한 종족의 내재적 핵심이 되는 문화를 지켜나갈 때 진정한 해방이 찾아온다고 모리슨은 역설한다.

"사람의 힘은 자신의 문화 유산의 깊이를 아는 데서 비롯된다" 고 말한 리드도, 유기체적 동질성을 주장한 소잉카도 한결같이 고유 문화를 강조한다. 국적과 성별 차이를 넘어서서 식민 구조를 경험한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역사의식과 고유 문화 보존을 지배 담론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모리슨이 전 작품에 걸쳐 궁극적으로 재현해내려고 한 것은 인종적 문화적 정체성에 앞서 흑인 여성의 역사이며 정체성이다.

대부분 남성 작가들이 제국의 본산과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면서도 자신의 공동체 내에서 성(性) 억압으로 신음하는 여성들을 외면한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엘리스 워커.폴 마셜과 함께 20세기 미 흑인 여성 문학을 이끌어온 모리슨은 바로 미 사회의 가장 주변적 언저리에 팽개쳐져 있는 흑인 여성에게 자존의 역사를 들려주고 생존의 의미를 부여한다.

『가장 푸른 눈』(70) 에서 근친 강간으로 찢긴 흑인 소녀 페콜라의 비극이 어디서 왔는지 질문하던 모리슨은 『비러비드』에 와서 흑인 여성의 짓밟힌 역사가 존귀한 생존의 기록임을 전해준다.

*** 흑인 여성의 이중억압 위무

"여기, 울고 웃는 우리 몸이 있습니다. 맨발로 수풀 위를 춤추는 몸이. 그것을 사랑하십시오. 열렬히…. 저 자들은 우리 것을 경멸하지요. 단지 이용하고, 포박하고, 질식시키고, 그 다음 내팽개칩니다. 두 손으로 만지고 토닥거려주세요. 저들이 사랑하지 않으니. " 『비러비드』에서 베이비 서그즈가 눈물과 격정으로 토해내던 설교는 모리슨이 흑인 여성에게 전해주는 복음이기도 하다.

인종과 성의 이중 억압 구조 속에 생존해온 흑인 여성의 삶 자체가 바로 기억해야할 역사이며 보존해야할 유산이라는 것을.

김애주 동국대교수.영문학

*** 토니 모리슨 연보

▶1931년 미국 오하이오 로레인에서 출생.

▶53년 하워드대 졸업.코넬대 대학원에 진학.

▶65년 랜덤 하우스 편집자.

▶70년 『가장 푸른 눈』(백양출판사, 93년) 출간.

▶73년 『술라』 출간.

▶76~78년 예일대에서 강의.

▶77년 『솔로몬의 노??문학세계사, 80년) 출간.

▶81년 『타르 베이비』 출간. 미 흑인 여성작가로는 43년 조라 닐 허스턴 이후 처음으로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표지 인물.

▶87년 『비러비드』 출간.

▶88년 『비러비드』로 퓰리처상.로버트 케네디상 수상.

▶89년 프린스턴대에서 강의.

▶92년 『재즈』 출간.

▶93년 노벨 문학상 수상.

▶97년 『파라다이스』 (들녘, 2000년) 출간.

<제4부 '새로운 환경을 위하여' 소개>

제1圖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 (게재일 6월 21일)

제2圖 바이츠제커의 '생태적 효율 혁명' (6월 28일)

제3圖 월드워치 연구소 사령관 레스터 브라운(7월 5일)

제4圖 생태여성주의 여전사 반다나 시바(7월 12일)

※제4부와 함께 제1부 '20세기에 대한 거역' , 제2부 '세계화의 도전과 응전' , 제3부 '기로에 선 모더니티' 기사는 중앙일보의 인터넷신문 조인스닷컴(http://www.joins.com)을 클릭하신 후 '기획.연재.쟁점 시리즈' 의 국제면에 들어가서 보십시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