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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난방 급증 … 올 겨울 한파로 최악 전력난 닥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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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여름 전력등급 ‘주의’ 단계가 발령되자 한국전력거래소 직원들이 서울 삼성동의 사무실에서 불을 끈 채로 일하고 있다. [중앙포토]

19일 경기도 과천시 지식경제부의 5층 전력산업과. 모두 ‘겨울철 전력위기’ 대책을 짜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이번 겨울엔 한파로 내년 1월의 최대 전력수요가 약 8000만㎾로 예상된다. 불볕 더위가 한창이던 8월 6일의 역대 최대치(7429만㎾)를 훌쩍 넘는다. 박성택 전력산업과장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전력난 고비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엔 12월에 내놓은 동계 전력 대책도 이달 말께 서둘러 내놓을 작정이다. 기업체에 절전 협조 등을 구하려면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23일 기상청에서 받는 최종 날씨 예보가 비관적이면 예상 전력 수요는 더 증가하게 된다. 이관섭 지경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산업체 수요 관리와 국민 절전 운동을 대대적으로 펴야 겨울을 무사히 넘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찬바람 불기가 무섭게 또 ‘전기 걱정’이 시작됐다. 올여름 비켜간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에어컨도 안 트는 겨울에 전력난을 걱정하는 이유는 뭘까. 몇 년 전만 해도 등유를 때서 난방하는 사람이 전기로 돌아서는 ‘전환(轉換)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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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이종수(기술경영경제정책 대학원) 교수는 “제조업에서 가열·건조 공정에 쓰이는 기름 수요는 최근 10년간 52% 감소했지만, 전력은 400%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농가의 경우도 몇 년 전부터 비닐하우스 난방을 등유에서 전기로 바꾼 곳이 많다.

 사회 곳곳에서 이 같은 ‘전기화(化)’ 현상이 불붙는 이유가 있다. 저렴한 요금 때문이다. 가천대 김창섭(에너지IT학과) 교수는 “1990년 전기 값은 등유보다 3.7배 비쌌지만 최근 1.2배 수준으로 거의 비슷해졌다”며 “기름에 붙는 세금을 올린 반면 물가 안정과 산업 육성 등을 이유로 전기요금은 억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품목에 견줘봐도 마찬가지다. 전기료는 지난해 ㎾h당 90원으로 40여 년 전의 27배가 됐다. 같은 기간 쌀·시내버스 요금은 각각 67배·131배 올랐다. 2003년 이후엔 고유가 지속으로 ‘전기가 효자’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지경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전력 소비에서 2006년 19% 수준이던 ‘난방용 전기’는 2010년 25%로 늘었을 정도다. 김창섭 교수는 “전문가가 수년 전부터 ‘전환 수요’를 우려하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날씨는 블랙아웃을 부르는 ‘최악의 복병’이다. 지난달 중순에 북극의 한국 다산과학기지에선 심상찮은 모습이 관찰됐다. 빙하가 눈에 띄게 녹아 면적이 342만㎢로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 북극 얼음이 줄면 상공에 가둬진 찬 공기가 내려와 한반도까지 덮쳐 ‘엄동설한’을 부른다. 기온이 1도 떨어지면 전력 수요는 50만㎾ 증가한다. 예년보다 2도만 낮아도 원자력발전소 1개(보통 100만㎾ 용량)가 더 필요해지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오영식(민주통합당) 의원은 “절전을 감안하지 않을 경우 올겨울 예비전력은 100만~200만㎾ 수준”이라며 “최근 원전 고장이 잦은데 올겨울 원전 2개만 멈추면 곧바로 정전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름엔 휴가철이 있어 전력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체 절전을 유도할 수 있지만 겨울엔 그마저 녹록지 않다. 오 의원은 “당장 급한 불을 끄려면 원전 고장과 정비 계획 등을 감안한 동절기 전력수급 계획을 차질 없이 짜는 한편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같은 비상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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