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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그들에게 응원은 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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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롯데의 응원문구는 독특한 지역 정서를 사투리에 녹여낸 것이 많다. ?오빠야 쌔리도’는 안타를 때려 달라는 염원을 표현한 것이다. [중앙포토]

해를 거듭할수록 프로야구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야구에는 다른 스포츠가 갖지 못하는 재미와 감동의 DNA가 따로 있는 것일까.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은 단순히 던지고 치고 달리는 신체의 움직임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의미를 해석하고 공유한다.

 야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풍부한 이야기성에서 찾아야 한다. 프로야구는 시즌 전체가 서사적인 성격을 갖는다. 1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영광과 좌절, 패권에 대한 도전과 복수의 염원이 라이벌 구도와 맞물려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투수와 타자, 수비와 공격, 스트라이크와 볼, 세이프와 아웃, 위기와 찬스 등 야구를 결정하는 기표들은 소설이나 영화가 상상하지 못하는 극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어낸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세이프는 환호가 되지만 상대 팀에는 탄식이 된다. 이처럼 하나의 사건이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양가성(兩價性)으로 인해 야구는 자주 인생에 비유된다. ‘9회 말 역전 홈런’은 승자의 기호임과 동시에 패자의 쓰디쓴 교훈이 된다.

 야구장을 찾는 일은 일종의 공동체 의식(儀式)에 대한 참여다. 롯데의 야구팬은 그 독특한 의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SK와 플레이오프 4차전을 보기 위해 지난 20일 사직에 도착한 필자도 신문지를 찢어 응원의 수술을 만들었다. 허접스러운 응원도구 하나를 만들었을 뿐인데도 묘한 공범의식과 함께 반드시 이기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사직 응원의 백미는 상대 투수가 견제구를 던질 때 “마!”라는 함성과 막대풍선을 내지르는 것이다. 은근히 한 번 더 견제구를 날려주기를 바랄 정도로 중독성이 있었다.

 응원의 함성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4회 말 손아섭이 2루타를 쳤을 때였다. 여성 팬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 아섭이 살아 있네!” 뒷좌석의 굵직한 중년 남자 목소리는 조카에 대한 애정처럼 정다웠다.

 물리적인 도구는 음향의 효과를 만날 때 극대화된다. 전준우가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은 이미 “안타, 안타, 쌔리라! 쌔리라! 로오떼 전주누”를 합창하고 있었다. 찬스마다 울려 퍼지는 ‘부산 갈매기’ ‘돌아와요 부산항에’ ‘뱃노래’ 등 응원가는 철 지난 대중가요가 아닌 부산 시민 스스로 집행하는 의식의 찬가였다. 그 합창을 통해 롯데는 비로소 부산이 된다.

 사람 사이의 만남이 밀실의 네트워크로 쪼그라든 디지털 시대에 야구장은 아날로그가 살아 있는 희귀한 공간이다. 응원은 내 몸이 현장에 있어야 이뤄진다. 9회 말 홍성흔의 홈런이 터졌을 때 일제히 일어서 롯데의 테마송을 부르는 순간 이미 경기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절정의 순간 함께 어깨를 겯고 쏟아내는 함성은 공동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오렌지색 비닐 봉투를 뒤집어쓰는 행위는 야구장에 모여 있는 한 우리는 남이 아니라는 할부(割賦·부적을 쪼개 나눠 가짐) 의식이었다.

김정효
서울대 강사·체육철학

 야구의 본질인 ‘홈(고향)으로의 귀소 본능’은 공동체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만나 ‘지역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그 재미있는 현상이 부산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서울 중심의 문화에서 소외된 박탈감을 지역 정체성으로 탈바꿈시킨 창의력은 통쾌함마저 느끼게 한다. “마!” “쫌!” “쌔리라(때려라)” “아주라(파울 볼 애 줘라)” 등 펄펄 뛰는 응원의 역동성은 경상도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 비로소 온전히 전달된다. 그 묘한 감정의 뉘앙스에 롯데 응원의 깊은 맛이 있다.

김정효(서울대 강사·체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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