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 女論

‘조선요리제법’으로 세상을 바꾼 방신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6면

이영아
명지대방목기초대학교수

세상 참 편해졌다. 요즘은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보고 싶으면 네티즌들이 블로그 등에 올려놓은 사진까지 첨부된 상세한 레시피만 확인하면 된다. 하지만 옛날엔 어땠을까? 아주 예전에는 3대가 모여 살았으니 부모세대로부터 조리법을 배웠을 테지만, 핵가족이 되면서부터 전통 레시피는 자녀세대로 전수되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요리책인데, 한국 최초로 근대식 요리책을 낸 여성이 바로 방신영이다.

 방신영(方信榮)은 1890년 한성 출신으로 정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광주 수피아여학교, 정신여학교, 이화여전 등에서 교직생활을 했다. 그녀는 이화여전 교수부의 8명밖에 안 되는 여성 교수 중 한 명이어서 이들을 소개하는 글(‘신촌동산에 난연(爛然)하게 핀 대 이화의 프로페서들’, 『삼천리』, 1935.3)에도 실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방신영은 ‘여사의 이름은 너무 유명하기에’라며 다른 교수들보다 간략히 소개할 만큼 당시 조선에서는 매우 잘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녀의 책 『조선요리제법』이 워낙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처음 요리전문가가 된 것은 학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가 요리에 일가견이 있어서였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전통요리 비법을 토대로 방신영이 쓴 『조선요리제법』은 1917년에 최남선이 만든 출판사인 신문관에서 나온 한식요리책이다. 이 책에는 한식의 가장 기초가 되는 국·김치·조림·찌개·무침·젓갈 등에 대한 조리법이 소개되고 있다.

 처음 출판된 뒤 1년 만에 재판을 찍고, 그 이후에도 20여 년간 꾸준히 개정 증보되어 10여 판을 찍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였다. 그러자 이 책을 표절한 책들이 발간되어 1933년에는 저작권 침해 소송이 일어날 정도였다. 제목 앞에 부기된 ‘만가필비(萬家必備)’라는 표현대로 당대 조선 가정의 필수 요리책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유명해진 방신영은 정신여학교 재직 중 2년간 도쿄에 건너가 요리연구소에서 연수를 한 뒤 더욱 본격적인 요리·영양전문가로서 한국의 식생활 개선과 식품영양관리 등에 대한 계몽활동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방신영은 요리전문가로서만 활동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근우회 임원으로서 항일여성운동에도 앞장섰고 조선여자교육회에서 여학교 설립에도 힘썼다. 또한 여자야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부인직업소를 설치해 가난한 부녀자의 자활을 돕기도 했다. 방신영은 ‘전통’에서 배운 지식으로 가장 ‘근대적’인 여성 활동을 한 여성이었다.

이영아 명지대방목기초대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