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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미국 TV 메인뉴스 첫 단독 진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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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32면

유대인들은 토라와 탈무드의 영향으로 강한 지적 호기심과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있다. 호기심과 상상력은 창의력의 기본이다. 우리같이 호기심은 ‘잡념’, 상상력은 ‘허황’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누가 혼자 외롭게 독창적 연구나 발명을 하면 주위에서 따돌리지 않고 적극 지원한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는 모두 외톨이였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美 인기 방송인 케이티 쿠릭

크면서 장로교회 다닌 ‘가까스로 유대인’
호기심과 상상력 그리고 논리적 사고는 근대 언론이 필요로 하는 적성이다. 유대인은 20세기 초 라디오 방송을 시작으로 방송에 본격 진출했다. 벨라루스 태생의 유대인 데이비드 사르노프는 1926년 NBC 방송을 설립했다.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윌리엄 페일리는 자신이 세운 RCA 라디오 방송을 확대해 1927년 CBS 방송을 창설했다. 43년 NBC에서 분리, 독립한 ABC는 후발 주자임에도 유대인 최고경영자 레너드 골든선에 의해 급속한 성장을 이뤘다. 미국 3대 지상파 방송 모두 유대인이 설립, 발전시킨 것이다.
53년 첫 출현한 컬러 TV는 영상매체 시대를 연 신호탄이었다. 시청자들이 가정에서 뉴스와 오락 방송을 접하게 돼 방송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냉전 시대 방송은 뉴스의 비중이 매우 컸다. 초기엔 남성 앵커 혼자 기계적이고 딱딱한 톤으로 뉴스를 전달했다. 그러다 차차 ‘뉴스 쇼’라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앵커’란 직종이 등장했다. 앵커는 뉴스의 개요만 소개하고 주요 내용은 취재진이, 그리고 해설과 분석은 전문가와의 대담으로 프로를 꾸려 가는 형태다.

미국 TV 뉴스 앵커의 전설은 단연 CBS의 월터 크롱카이트(1916~2009)다. 그는 뉴스 쇼의 혁신을 이룬 인물로 그의 큐시트는 교재로도 쓰일 정도다. ‘60분’이란 CBS 뉴스 쇼를 무려 37년간 진행한 러시아계 유대인 마이크 월러스도 뉴스 쇼의 원로다.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바버라 월터스는 여류 방송인의 시조다. 그리고 케이티 쿠릭(사진)은 지상파 메인 뉴스를 단독으로 진행한 최초의 여성 앵커였다.

쿠릭은 57년 수도 워싱턴 외곽 알링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독일계 유대인, 언론인인 아버지는 프랑스계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므로 쿠릭은 혈통적으로 유대인이다. 그런데 그녀는 장성하면서 장로교 교회를 다녔다. 그래서 종교적인 면을 중시하는 미국 아시케나지 유대인들은 쿠릭의 유대인 정체성에 대해 ‘가까스로 유대인(Barely Jew)’이란 표현을 쓴다.

쿠릭은 버지니아 주립대에서 영어와 미국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ABC 뉴스의 편집보조로 방송계에 몸담는다. 86년부터 NBC 워싱턴 지역 방송기자로 근무하면서 수개의 특종상을 받았다. 89년엔 NBC 뉴스 국방부 출입기자로 뛰면서 아침 뉴스 프로 ‘투데이’에 보조 앵커를 맡았다. 이어 저녁 뉴스 매거진 ‘나우’에서 당시 인기 앵커인 톰 브로커와 같이 방송하기도 했다. 또한 이때 미국 역대 대통령과 영국 총리, 해리 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 등 유명 인사 다수와 인터뷰했다.

미국 3대 지상파 방송은 저녁 프라임 뉴스 시청률에 목을 맨다. 우리도 사정이 비슷하지만 메인 뉴스 시청률은 광고 수입과 직결돼 있다. 약 6억 달러(약 6600억원)의 광고 시장이다. 2000년대 초 뉴스 시청률 판도는 NBC-ABC-CBS 순이었다. 60~70년대 뉴스 시청률 부동의 1위를 자랑하던 CBS가 꼴찌로 떨어진 것은 커다란 굴욕이었다. 그래서 CBS는 NBC 아침 뉴스 프로 ‘투데이’를 시청률 1위로 만든 쿠릭을 2006년 연봉 1500만 달러(약 170억원)의 거액을 들여 스카우트했다. 그리고 여성 앵커론 최초로 저녁 프라임 뉴스의 단독 진행을 맡겼다. 커다란 모험이었다. CBS는 쿠릭의 등장에 맞춰 무려 1000만 달러의 쿠릭 홍보비를 투입했다.

그해 9월 5일 쿠릭의 첫 방송이 나갔다. 밝고 부드러운 인상에다 미모도 갖춘 쿠릭의 등장은 선풍을 일으켰다. 그녀는 나열식이 아닌 대화식으로 뉴스를 진행했다. 대성공이었다. 첫 방송부터 1위였던 NBC 뉴스의 두 배 가까운 시청률이 나왔다. 경제지 포브스는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 중 쿠릭을 언론인으론 가장 높은 순위인 54위에 올리기도 했다. 또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인기 여성 방송인’ 1위로 자주 선정됐다. 쿠릭은 이제 ‘미국의 연인’이란 애칭을 얻기에 이르렀다.

ABC ‘굿모닝 아메리카’ 공동 진행 중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쿠릭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녁 메인 뉴스는 기본적으로 전달자의 신뢰감을 중시한다. 쿠릭이 신뢰감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보도와 예능을 혼합한 식의 진행을 했다. 뉴스 전달의 진지함이 줄어든 것이다. 3년 차에 접어들자 쿠릭의 뉴스는 현저한 하락세를 보였다. 전임자인 유명 앵커 댄 래더도 그녀의 진행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서 쿠릭은 계약이 끝나는 해인 2011년 5월 19일 마지막 방송을 내보내고 CBS 뉴스를 하차했다. 이후 ABC의 순회특파원 자격으로 아침 뉴스 쇼 ‘굿모닝 아메리카’를 남성 앵커와 공동 진행하고 있다.

우리 각 방송국도 저녁 프라임 뉴스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런데 어디를 보아도 천편일률적이다. 거의 예외 없이 보도부 출신의 남성 앵커와 미모의 여성 아나운서가 2인 1조로 공동 진행한다. 오늘날 우리 여성의 사회 참여가 크게 확대되고 있음에도 아직 여성 앵커는 ‘꽃’이라는 편견이 남아 있는 듯하다. 미모 수려한 젊은 여성 아나운서가 남성 앵커의 보조로 비중이 적은 뉴스를 소개하는 것은 이제 오랜 관행이 됐다. 그런데 시청자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앵커의 미모보다는 뉴스 전달자에 대한 신뢰감이다. 물론 앵커의 인상이 혐오감을 주어서는 안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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