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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골랐어요] 세밀화 도감

중앙일보

입력

사람들은 '세밀화' 를 사실 그대로 그린 그림,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그림, 사진보다 더 정교한 그림이라 말합니다. 저는 여기에 덧붙여 '보이는 그대로 그리되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린 그림' 이라 표현해 보겠습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세밀화는 정확한 묘사에 그치지 않고, 생명체의 생태와 생명력까지 진지하게 전해 주기 때문이죠. 이것은 인물의 사실적인 묘사는 물론 인품이나 정신세계까지 잘 표현된 초상화를 걸작이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따라서 훌륭한 세밀화는 생명체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올바른 이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 세밀화가 도감에 쓰이면 사진이 해낼 수 없는 일을 합니다. 아무리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 사진이라 해도 세밀화는 사진이 미처 보여주지 못하는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보여주거든요. 더구나 살아있는 느낌과 함께 정보를 전달해 주는 그림으로는 세밀화가 꼭 알맞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정교하게 그렸다 한들 사진보다 낫겠는가 반문합니다. 그러나 사진 도감과 세밀화 도감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세밀화로 그린 『나무도감』 (보리) 을 보면 사진에서는 구분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를 볼 수 있어요. 나무껍질의 질감, 미세한 무늬, 실핏줄 같은 잎맥, 꽃받침, 겨울눈까지 치밀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실, 세밀화로 그린 도감을 만드는 일은 '종자보존' 만큼이나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기초서적 확보' 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더욱 더 활발히 진행되어야 할 일이죠.

또 철저하게 원형을 살려낸다는 점에서 세밀화는 그림책 그림으로도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대상을 정확하게 반복해서 그리다보면 생략할 것은 과감히 생략하고, 특징을 잡아내 단순화하는 가운데 독특한 캐릭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국에서 만들어낸 캐릭터는 거저 나온 것이 아니라 원형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연구에서 비롯된, 오랜 전통의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건너뛴 채 결과물만을 흉내낸다면 생명력 있는 캐릭터가 나오기 힘들어요. 더구나 어린이 책의 그림일수록 더 정확해야죠. 특히 살아있는 것을 표현할 때, 사실과 다르거나 지나치게 왜곡된 표현은 정말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세밀화 그리는 것이 몹시 더디고 폼나는(□) 일이 아니라 하여 그리는 이들의 고충이 무척 크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자연자원을 정확하게 그려서 가치있는 자료로 남겨준 것에 대해 사람들은 두고두고 고마워 할 것이니 모쪼록 힘내시기를!

허은순 <애기똥풀의 집 pbooks.zzagn.net)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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