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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발견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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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성 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그리고 플로리안은 그 광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모카 커피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

인제대학교 이광주 명예교수의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다른세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초청장처럼 서두에 실린 문장이다. 이 문장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이 책은 1683년 베네치아 성 마르코 광장의 통령 관저 회랑 한쪽에 문을 연 이탈리아 최초의 카페 ‘플로리안’에 대한 얘기를 다루는 게 핵심이다. 이때 ‘플로리안’이란 서양 지성사 전체를 건드리는 뇌관과 같은 것이다.

사랑의 발견이 지성사에 미친 영향
이 책은 1992년 까치글방에서 발간된 『유럽 사회 풍속 산책』에 수록됐던 단편 7편을 고쳐 쓴 글과 새롭게 쓴 글 10편을 모아 엮었다. 대학시절, 부르크하르트의 명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읽고 서양사학의 길로 접어든 글쓴이의 이력답게 ‘유럽’과 ‘문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 서양 지성사에서 대화하기, 혹은 대화의 공간이 어떻게 형성돼 나갔는지 살핀다.

17세기 이탈리아의 카페 플로리안에 이르는 과정에서 글쓴이가 가장 주목하는 시대는 바로 12세기다. 『중세의 가을』을 쓴 호이징가는 12세기를 ‘비할 바 없이 창조적인 시대’로 평가했다. 바로 이 시대에 유럽 사회에는 기사도가 뿌리내렸는데, 그 과정에서 프랑스의 역사가 세뇨보스가 말한 바 ‘사랑이 발명됐다’.

사랑의 발명이 서구 지성사에서 왜 중요한가를 밝히기 위해 글쓴이는 다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로 향한다. 이 책에 묘사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의 사회, 여성 멸시의 사회였다. 그러니까 12세기 사랑의 발명이 더 없이 중요한 까닭은 이를 통해 여성이 재발견됐기 때문이다.

한편 이 책은 또 다른 맥락에서 서구 지성사의 중요한 핵심을 찾아낸다. 이는 바로 교양인이라는 개념이다. 고대 그리스를 모태로 한 고전적, 인문주의적 교양은 헬레니즘 문명과 로마의 사회적 전통이 슬기롭게 융합되어 빚어진 결정체였다.

이 때 고전적, 인문주의적 교양이란 전통적으로 문학적이며 미적인 것이다. 따라서 교양인이란 고대 그리스 이래 수사학의 교사로 여겨졌다. 유럽 지성사의 꽃으로 떠오르는 살롱, 혹은 카페란 이 교양인과 재발견된 여성이 만나 이뤄진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역사를 장식한 세기의 카페들
이런 맥락을 이해시킨 뒤, 이 책은 역사상 유럽에 존재했던 중요한 카페를 소개한다.

플로리안에는 루소, 괴테, 스탕달, 샤토 브리앙, 바그너, 디킨즈, 러스킨, 브라우닝, 프루스트, 모네, 마네, 하이네, 니체, 릴케 등이 찾았고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 죽다」와 단눈치오의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탄생했다.

또 유럽 최초의 카페인 런던의 파스카 로제, 유럽 2세대 카페의 전형으로 여겨지며 알텐베르크, 헤르만 발, 슈니츨러, 호프만슈탈 등 세기말 문학을 대표하는 ‘청춘 빈파’의 요람이 된 빈의 첸트랄, 말라르메, 베를렌, 랭보, 발레리, 릴케, 장 콕토, 오스카 와일드, 에즈라 파운드 등의 아름다운 이름들이 거쳐간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의 되 마고, 사르트르와 동일시되는 플로르 등이 이 책에 소개된 주요 카페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형성된 담론의 공간이 어떻게 유럽이라는 문화적 공동체를 만들어나갔는가 살핀다. 글쓴이는 이 부분에서 독서문화, 인쇄술, 백과전서파, 자유사상가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데, 이 과정에서 이성이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주지하다시피 이 확산된 이성은 유럽 시민혁명의 토대가 됐다.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는 사랑의 발견, 세기의 카페, 독서 문화 등 서양 지성사의 주변부를 다루면서도 이런 작은 요소들과 시민혁명이란 큰 요소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흥미진진하게 펼쳐놓은 책이다.

몇 해 전 나온 주명철 교수의 『파리의 치마 밑』과 『지옥에 간 작가들』과 좋은 짝이 되는 국내 저서가 아닐 수 없다.(김연수/리브로)


■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

■ 커피이야기

■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 되 마고, 플로르 등 파리의 카페를 다룬 글

■ 커피와 카페의 사회사(영문)

■ 런던의 커피하우스(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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