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01년 상반기 출판 분야 좋은책 5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화인열전》, 유홍준 지음, 역사와비평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영남대학교 유홍준 교수가 야심적으로 쓴 우리 화가들 평전 모음이다.

그를 자극한 책은 학창시절 읽은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1568)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책이 없다는 사실, 아니 그것보다는 그런 책을 엮어야겠다고 노력하지 못하는 사실이 안타까워 조선시대 대표적인 화가 10여 명의 전기를 장차 쓸 생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유교수가 참조한 자료는 오세창의 《근역서화징》, 유복렬의 《한국회화대관》, 이동주의 《우리나라의 옛 그림》, 안휘준의 《한국회화사》 등이다. 10여 년간 이렇게 자료 수집을 한 끝에 유교수는 1990년 봄부터 계간 《역사비평》에 ‘조선시대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완성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연담 김명국, 공재 윤두서, 능호관 이인상, 호생관 최북,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 등 여덟 명의 화가를 다룬다. 이 책에서 실리지 않은 추사 김정희는 또 다른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부뢰 지음, 민음사

가족은 출판에서 언제나 환영받는 분야의 하나로 출판계에서는 대개 5월경이면 적기로 잡는다. 아들이 제5회 쇼팽 국제 피아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폴란드로 떠난 1954년부터 아버지가 문화 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게 되는 1966년까지 아버지 부뢰가 아들 부총에게 보낸 편지 110통을 모아 엮었다.

1984년 중국의 북경과 홍콩에서 동시에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1백 여만 부가 팔린 밀리언셀러로 아들의 교육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 바치는 아버지의 부성이 잘 드러나 있다.

“힘을 다해 우리의 경험과 냉철한 이성을 너희들에게 바쳐 너희들의 충실한 지팡이가 되고 싶다. 어느 날, 너희들이 이 지팡이가 귀찮다고 생각할 때 나는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추어 절대 너희들에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부뢰의 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책에 실린 편지는 모든 아버지에게 적용되는 보편성을 띄고 있다.

건강, 금전, 결혼 등 일상의 세세한 부분에서부터 아들이 전공하는 음악에 대한 견해까지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했다. 이 책은 아버지가 주고 싶어했던 그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 지음, 효형출판

최근 출간된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에서 시인 최승호와 재미있는 대담을 나눈 바 있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의 책이다.

《개미제국의 발견》이라는 책으로 필명을 널리 알린 바 있는 최교수인지라 이 책에서도 개미 사회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단순히 곤충에 국하되지 않고 꿀벌, 거미, 새, 물고기 등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다루면서 동시에 그 동물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세계를 떠올리고 있다. 인간 세계를 관찰하며 정글의 법칙을 발견하는 일이 비정한 작업이라면 동물 세계를 지켜보며
인간이 원래 온 곳이 어딘지 설명하는 일은 따뜻하기만 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동물 세계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아름다움이 보인다. 이 책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자연의 모든 것과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역설한다.


《더불어 사는 인간과 자연》, 박이문 지음, 미다스북스

지금은 미국 시몬스대 명예교수로 재직중인 노학자의 최근 글과 인터뷰를 모았다. 《문명의 위기와 문화의 전환》 등을 거치면서 박이문 교수의 관심사는 전환의 시대에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관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집중됐다.

정체성과 가치관의 정립이 시급한 까닭은 어떻게 전환되느냐에 따라 총체적 파멸의 문명이냐, 새로운 생성의 문명이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관심은 동물권과 동물해방에서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거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문학적 문제 제기를 통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방향타를 잃은 문명에 휩쓸리지 않고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데 있다.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 이광주, 한길사

최근 개정한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도 펴낸 바 있는 이광주 인제대학교 명예교수의 책으로 《출판저널》과 《책과 인생》에 각각 1년씩 연재한 글을 모았다.

전자책에 대한 담론이 무성하고 인터넷서점이 활개를 치는 오늘날, 이처럼 책의 물성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게 사뭇 이상하기만 하지만 책은 이 물성이 그 존재의 반이다. 화려하게 장식한 각종 미장본들, 책들이 숨을 쉬는 고서점과 도서관, 수도원에서 필사에 여념 없는 수도사들이 이 책 안에는 담겨 있다.

미식가가 혀에 봉사하는 음식을 찾아 헤매듯 이 책 안에는 손끝과 눈에 흡족한 책 한 권을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바치는 애서가가 나온다. 책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는 늘 조금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이 책의 화보와 내용이 전하는 메시지다.(김연수/리브로)


■ 화인열전 1

■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

■ 더불어 사는 인간과 자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