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정원 보관분 공개 땐 다 명백하게 드러날 것”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12월 대선을 두 달가량 앞두고 물밑에 숨어 있던 북한 이슈가 급부상했다. 5년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존재와 내용을 둘러싼 공방전이다. 북한 핵 개발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한미군 문제를 포괄하는 종합세트다.

새누리당 정문헌(46·강원 속초-고성-양양) 의원이 이슈를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영토주권 포기 발언을 했다는 게 정의원의 주장이다. 정 의원은 또 그런 내용을 녹취한 대화록이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당시 공식 수행원이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은 “별도의 단독 회담은 없었다. 따라서 비밀녹취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논란이 커지더니 급기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서로 “책임지라”며 초강경으로 맞섰다. 문 후보는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이었다.

북한 이슈는 주요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변수다. 직접 영향을 미친 예가 1996년 4월 총선이다. ‘북풍’(北風)이란 말이 그때 나왔다. 중무장한 북한군 1개 중대, 130여 명이 96년 4월 5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측 지역에 투입됐다. 다음 날엔 260명, 그 다음 날엔 4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면서 15대 총선(4월 11일)에서 집권 여당이던 신한국당이 거대 여당을 꾸렸다.

이런 위력이 북한 문제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유혹도 만들었다. 이듬해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은 지지율을 올리려고 북측 인사와 접촉해 총격 시위를 요청했다. 이른바 ‘총풍(銃風)’ 사건이다. 군사적 긴장이 만드는 국민의 안정 희구 심리를 기대한 것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남북한 화해 무드가 조성된 경우도 있다. 김대중 정부는 16대 총선을 사흘 앞둔 2000년 4월 10일 “남북정상회담을 6월에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2007년엔 대선을 2개월여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모두 야당이 “선거용 정상회담”이라고 반발했고, 집권당엔 역풍이 불었다. 그래서 남북 대결 분위기가 고조되든, 화해 국면이 확산되든 북한 이슈는 보수 정당에 유리하다는 공식까지 나왔다.

하지만 2010년 6·2 지방선거 땐 정반대였다. 3월 26일 천안함이 폭침됐고, 이명박 정부는 대북 강경책인 ‘5·24 조치’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여당인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대패했다.

이명박 대통령 통일비서관 출신
정문헌 의원은 재선 의원(17·19대)이다. 4선 의원 출신으로 친박(친박근혜)계였던 정재철 전 의원의 아들이다. 경제관료 출신의 아버지와 달리 정 의원은 남북·안보 전문가다. 18대 총선에선 공천에 낙천했지만 2009년 초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비서관으로 일했다. 의원 출신 비서관이 이례적이어서 당시엔 화제가 됐다.

12일 오전 11시30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정 의원은 분주했다. 인터뷰 중에도 그를 찾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괄호 안의 ※표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다.

-비밀녹취록이 정말 있나.
“내가 비밀녹취록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대화록이 공개 안 돼, ‘비밀로 돼 있다’고 말했다. 단독 회담이 있었고, 녹음을 북쪽에서 했다. 북한 통일전선부는 녹취된 대화록을 우리에게 줬다. 우리는 메모를 적은 게 있다. 그걸 같이 기초 자료로 삼아 대화록을 풀어서 만든 거다.”

-북한은 녹음했는데, 우리는 왜 못했나.
“그건 그쪽에 물어보세요. 김만복 원장에게.”(※김만복 전 원장은 녹취 대신 손으로 받아 적는 수기를 했고, 녹취록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당시 조명균 안보비서관과 김만복 국정원장이 받아 적은 뒤 대화 내용을 복기해서 대화록으로 작성했다는 것이다.)

-대화록은 갖고 있나.
“확인해 줄 수 없다.”

-녹취록과 대화록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나.
“그걸 확인할 순 없고, 상식적으로 정권이 일을 하려면 전 정권의 정책을 이해해야, 또 정확하게 알아야 계승할 건 계승하고 개선할 부분은 개선한다. 그런 프로세스가 상식이다.”(※이명박 정부는 2009년 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고, 정 의원은 당시 청와대 통일비서관이었다.)

-청와대의 다른 사람도 알고 있나.
“정확하게 확인드릴 수 없다.”

-설사 있다고 해도 밝히는 건 불법이라고 민주당은 주장하는데.
“1997년 대법원 판례에 보면 국가 기밀이란 ‘알려졌을 때 국민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고 규정한 게 있다. 그런 기준이면 비밀 요건의 성립이 안 된다. 이건 국민이 알아야 하고 판단해야 할 상황이다.”(※우리 정부가 작성한 남북 정상 간 대화록은 국정원과 국가기록원 두 곳에 있다. 1급 비밀로 분류돼 국정원이 스스로 제출하지 않는 한 청와대 통일비서관이 보기 어렵다. 국가기록원 기록도 법률상 15년에서 30년간 볼 수 없도록 돼 있다. 하지만 ‘대통령기록관장의 사전 승인
이 있으면’ 열람이 가능하다.)

-대화록을 읽어봤나.
“확인해 줄 수 없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대로 ‘국격이 훼손될 만한’ 충격적인 내용이 있나.
“그런 얘기 한 적 없다. 언론이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국격 훼손 얘기는 안 했다.”

-이재정 전 장관은 부인하는데.
“이 전 장관과 내가 말하는 대화록이 같은 거다. 국정원이 보관하는 부분을 공개하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NLL과 북한 핵개발에 이어 주한미군 관련 얘기까지 나왔다. 폭로할 게 더 있나.
“확인해 줄 수 없다. 하지만 주요 내용은 다 말씀드린 거다. 북핵까지 나왔는데…뒷부분은 경제협력 얘기고….”

-그렇다면 2000년 당시 김대중·김정일 회담 내용도 알고 있나.
“확인해 줄 수 없다.”

-왜 지금 밝혔나.
“북한이 먼저 공개하지 않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9월 29일 국정감사 때인데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10·4선언은 NLL의 불법, 무법성을 전제로 이뤄진 합의다. NLL을 고수하겠다는 괴뢰 당국자들의 얘기는 북남 논의의 경위와 내용을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10·4선언과 북이 알고 있는 10·4선언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차이를 말했을 뿐이다.”

최상연 chois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