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주식펀드 썰물 … 금 펀드만 이름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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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펀드가 몰락하고 있다.’

 이 표현이 과격하다면 범위를 좁히겠다. 주식펀드, 특히 해외주식펀드가 몰락하고 있다.

 ‘1가구 1펀드’ 시대를 열어젖혔던 주역인 은행은 더 이상 펀드를 팔지 않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요즘 고객은 즉시연금 같은 절세 상품 아니면 주가가 떨어져도 수익이 나는 주가연계증권(ELS)만 찾는다”고 말한다.

 해외주식펀드의 몰락은 숫자가 말해 준다. 2008년 말 54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불어났던 설정액이 최근엔 27조원 아래로 쪼그라들었다. 4년도 안 돼 반 토막 났다. 2009년 이후 줄곧 돈은 빠지기만 한다. 비과세 혜택이 끝난 데다 결정적으로는 성과가 신통치 않다. 최근 5년 수익률이 -32%다. 같은 기간 국내주식펀드는 평균 6%의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평균’은 가끔 또 다른 사실을 숨긴다. 마이너스 수익률에 허덕이는 건 중국펀드다(물론 해외펀드 자금의 대부분이 중국펀드에 쏠려 있기는 하지만). 단기로 보면 해외펀드가 국내펀드보다 성과가 낫다. 유형·지역별 펀드를 통틀어 모든 펀드 가운데 3분기 수익률이 가장 높은 건 ‘블랙록월드골드펀드’다. 7~9월 석 달간 24%를 웃도는 수익을 냈다. ‘신한BNPP골드1펀드’ 역시 수익률이 20%에 육박하는 등 이번 분기엔 금 펀드가 ‘이름값’을 했다. 미국·일본·유럽·중국 등 전 세계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시장에 돈을 풀고 나서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부각됐다. 금은 전통적으로 가장 유력한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다. 게다가 혹시나 모를 악재가 나와도 ‘안전자산’으로서 금의 가치는 빛날 수 있다. 금값은 최근 3개월간 12% 올랐다. 온스당 1800달러 돌파가 눈앞이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올해 안에 2000달러 돌파도 가능하다고 본다. 조지 소로스, 존 폴슨 등 헤지펀드 대가들은 이미 앞서 금 투자 비중을 늘려놨다.

 세계의 유동성 확대로 3분기에는 금뿐 아니라 원자재가 전반적으로 강세였다. 덕분에 18%의 수익을 올린 ‘미래에셋러시아업종대표펀드’를 비롯해 러시아·동유럽 펀드 6개가 수익률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브라질과 인도 펀드는 10위권은 아니지만 상위권에 대거 포진했다. 결국 2007년 해외펀드 바람을 몰고 왔던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가운데 중국을 빼고는 좋았던 시절을 재현해 냈다. 김대열 하나대투증권 웰스케어센터 팀장은 “글로벌 유동성 확대로 향후에도 원자재나 신흥국 관련 펀드의 수혜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과거처럼 특정 국가 펀드에 돈을 몰아넣는 투자방식은 안 된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개별 국가 증시의 흐름을 예측해 정확한 타이밍에 매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자칫했다가는 ‘고점 매수 저점 매도’라는 악수를 둘 수 있다.

김후정 동양증권 연구원은 “해외펀드를 무조건 외면하기보다는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7대 3, 혹은 8대 2 정도 비중으로 국내와 해외에 나눠 투자하는 게 좋다”며 “개별 국가 펀드보다는 글로벌이머징펀드 등처럼 매니저가 시장 상황에 따라 국가 투자 비중을 조절해 주는 펀드가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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