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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도 맷집 강했다 … 한국 주식 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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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딱히 뭘 사고 팔지도 않고, 하던 대로 했는데….”

 올해 3분기 펀드평가에서 운용사 수익률이 ‘톱3’라는 말을 들자 황성택(46·사진) 트러스톤 자산운용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주식이 아닌 기업을 사서 오래 보유하며, 시장보다는 경제 구조의 변화에 주목한다’는 철학을 내세우는 운용사 대표 겸 CIO(최고 운용책임자)의 반응답다. 트러스톤은 개인보다 기관투자가에 더 유명한 운용사다. 액티브 주식 공모펀드는 딱 두 개, 그 규모는 1조원도 못 되는데 전체 순자산은 7조2000억원이다. 나머진 국내외 연기금·보험사 등 기관이 맡긴 돈이다. 해외 투자자를 만나느라 추석도 출장으로 보냈다는 황 대표를 4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 기업이 얼마나 강한지 위기를 겪으며 증명됐고 이를 해외 투자자에게 수없이 말하고 다닌다”며 ‘한국 주식 전도사’를 자처했다

 -3분기 성과가 좋았다.

 “한 게 없다(웃음). 요즘 매매 잦은 운용사가 초과수익을 내지 못해 우리가 상대적으로 부각된 것 같다. 좋은 주식 발굴해서 보유하는 트러스톤 같은 방식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때다. 그리고 이런 패턴은 앞으로도 오래갈 것 같다. 2009년 이후 산업소재주가 증시를 이끌던 흐름은 무너졌다. 대신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갖고 현금 흐름을 창출하며 꾸준히 배당하는 기업으로 중심축이 옮겨 갔다. ‘경기가 회복되니 소재주를 사야 한다’는 전략을 펴는 운용자는 요즘 몹시 힘들 것이다. 산업소재주가 최근 8년 승승장구한 데는 중국과 러시아, 신흥국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이 나라들이 힘을 못 쓴다. 미국의 3차 양적완화(QE3)로 중국 증시가 급등하지 않는 건 QE3 했다고 중국 경기가 살아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엔 주식이 인기가 없다. 그래도 투자해야 하나.

 “‘한국 주식’에 투자하라. 2008년 이후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을 보면 역시 정부·기업·가계 중 기업이 가장 강했다. 특히 중국이 망가졌는데 한국 기업은 잘 견딘다.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곳도 나왔고, 삼성엔지니어링(※2000년 초 3000원대이던 이 회사 주가는 지난해 한때 28만원이 돼 10년간 70배 넘게 올랐다) 같은 회사도 여럿 있다. 요즘 한국 주식을 사는 외국 자금은 예전과 성격이 다르다. 기업연금이나 대학기금 등 장기투자자가 대부분이다. 경기 주기가 아닌, 이런 구조적 변화를 보고 사는 것이다.”

 -특히 주식펀드에 대한 불신이 높다.

 “그간 펀드에 워낙 당해서. 양극화와 부동산가격 하락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올 초부터 유럽 위기다 뭐다 요란했지만 결국 코스피 지수는 10% 올랐다. 주식은 어쨌든 채권·부동산과 마찬가지로 한 종류의 자산이고, 자산에선 수익이 난다. 지금 지수 기준 한국 주식의 예상수익률은 11%쯤이다. 배당도 받으면 연 13%. 이를 기준으로 경기가 좋으면 20%, 나쁘면 10% 밑의 수익을 내는 게 주식이란 자산이다. 결국 길게 보면 복리로 연평균 13%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게 주식투자다. 연 40~50%를 기대한다면 아예 주식펀드에 가입하지 말아야 한다.”

 -국내외 기관투자가에 인기가 많다.

 “고객의 질이 운용사의 질을 결정한다. 단기 수익률이 처질 때 고객이 조급해 하면 운용사는 꾸준한 성과를 낼 수 없다. 어떤 운용자가 ‘모든 종류의 돈을 다 받아서 다 잘 운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기다. 우리는 개인자산가의 뭉칫돈은 수수료나 성과보수가 높아도 잘 맡지 않는 편이다. 단기 성향이 강해 우리 철학과 잘 맞지 않아서다. 수수료가 박해도 연·기금 등 스타일이 잘 맞는 기관자금을 선호한다. 공모펀드 1조원도 못 되는데 전체 순자산이 7조 넘는 게 무얼 뜻하는지 눈여겨봐줬음 한다.”

 -헤지펀드 성과가 좋다(※이 회사의 싱가포르 현지법인이 운용하는 헤지펀드는 지난 분기에 연 수익률 14%를 내 아시아 헤지펀드 중 10위에 올랐다).

 “한국 정보기술(IT) 주식은 롱(매수)하고 일본 IT주를 숏(매도)하는 등 전 아시아 주식을 대상으로 롱숏전략을 썼는데 결과가 좋았다. 아시아에서 헤지펀드를 제대로 하는 운용사가 별로 없다. 우리가 보여주고 싶다. 빌 황이 이 펀드에 종잣돈을 내줬다(※빌 황은 한국계 헤지펀드 매니저로 ‘헤지펀드의 전설’ 줄리안 로버트슨 타이거펀드 매니저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인 시점을 말하긴 어렵지만 국내에서도 헤지펀드 운용사를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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