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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스마트폰은 얻었지만 사색은 놓쳐버린 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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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0월의 주제 시간의 지혜, 세월의 위안  아침 저녁으로 차가워진 공기에 옷깃이 절로 여며지는 시기입니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 달의 책’ 10월 주제는 ‘시간의 지혜, 세월의 위안’입니다. 벌써 올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이 다가왔다는 뜻이겠죠. 얼마나 다행입니까. 시간은 우리에게 경험과 성찰의 기회를 선물합니다. 삶의 지혜를 온축한 신간 과 함께 올 가을을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동녘, 400쪽, 1만6000원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에 열중하느라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친구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10대들이 적잖다. 이들이 가상세계에 매력을 느끼는 주된 이유는 뭘까. 이 책을 쓴 폴란드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오프라인 생활에서 출몰하는 모순과 충돌이 없다는 점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당신이 일단 (페이스북·트위터 등) 온라인에 상시로 접속해 있다면,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라고. 또 “당신이 고독의 맛을 결코 음미한 적이 없다면 그때 당신은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이 책은 디지털 만능주의·소비지상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박탈당하고, 놓치고, 잃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내용이 여러모로 놀랍다. 2010년 영어판 출간 당시 85세 나이에도 쇼핑과 패션·신용카드·성형수술·프라이버시 등 시대 흐름에 촉을 곤두세워 관찰하고, 번득이는 통찰력으로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날카롭게 짚었다는 점에서다.

 바우만은 트위터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보여진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며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는 현대인의 초상을 읽어낸다. 또 인터넷을 매개로 한 가벼운 만남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양의 즐거움을 얻어내기 위해 즐거움의 질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돈을 치르고 근심에서 탈출하는 데 익숙한 소비지상주의 사회에서 부모와 아이의 관계마저도 상업화됐다’고 꼬집는다.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할 의무를 져버리고 돈으로 애정을 표현하면서 ‘스스로의 권위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바우만이 주목한 게 더도 덜도 아닌 우리네 사는 풍경 그 자체인데, 그게 이유가 있었다. ‘일상성이라는 의심스러운 장벽’에 주의하라고 경고하기 위해서다. 그는 “친숙한 사물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면, 곧 그 사물들은 아주 기묘하고 수수께끼 같은 것으로 돌변할 것”이라며 “(일상에서) 거짓말과 환영, 쓰레기 같은 껍질을 분리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학 용어가 지뢰처럼 깔려있지만, ‘공포에 대한 공포’ ‘건강불평등’ 등 에세이 44편은 노학자의 혜안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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