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누가 축제의 흥을 깨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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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혁진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싸이와 한솥밥 먹은 적 있다. 군 복무 시절 나는 그와 같은 식당을 썼다. 어느 날 식당에서 그의 뒤에 줄을 서게 됐다. 나는 용기를 내 그에게 “팬이에요”라고 말을 걸었다. 그는 날 슬쩍 보더니 “난 소시(소녀시대) 팬이야” 하며 웃었다.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은 ‘월드스타 싸이’가 아니라 ‘상병 박재상’이었다.

 그는 유쾌했다. ‘놀 줄 아는 형’이자 두 번째 군 생활에서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위계와 규칙으로 딱딱하게 짜인 군 생활이다. 그는 답답함 속에서도 자기 스타일을 잃지 않았다. 식사 후 식판을 닦던 그의 손놀림은 몇 년 뒤 말춤으로 진화했다. 그가 준비한 축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지만 축제의 흥을 깨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다. 일부 매체는 일본에서 싸이가 인기가 없다는 내용의 기사들을 갑작스레 쏟아냈다. 빌보드 차트를 한국인들이 조작했다고 믿는 일본인들의 반응도 실었다. 사람들의 애국심을 건드려 축제 판에 애꿎은 증오를 심은 언론이다. 일본에서 ‘강남스타일’이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춤을 추건 말건 그건 그들 자유다. 일본인들이 말춤을 추지 않는다고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강남스타일’ 축제의 흥이 깨질 리 없다.

 집안 어른들의 지나친 해석도 부담스럽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싸이 노래에 “한국적 특색이 있다”며 K팝의 위상을 증명한 사례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여러 번 돌려봤지만 관광 버스와 오리배 말고는 한국적 특색을 찾기 힘들었다. ‘강남스타일’이 K팝의 위상을 보여준 것도 맞다. 하지만 싸이의 음악은 과거 우리가 K팝이라며 외국으로 수출하던 노래들과 거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듯한 해석들이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놀 줄 아는 놈’ 입장에서는 그냥 놀게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속 편한 법이다. 어느 기업의 회장님은 제2의 싸이를 키우는 데 수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취지야 좋지만 대규모 자본과 거리가 멀었던 싸이다. 자기답게 충실히 놀 수 있었던 자유로움이 그를 만들었다. 조직 내 분위기를 밝게 한다고 직원들에게 말춤을 강제로 연습시키는 게 요즘 기업들이라고 한다. 회장님들께서 싸이 같은 인재를 진정으로 찾고 싶으시다면 경직된 기업문화부터 바꾸는 것이 순서다.

 과잉된 애국심과 엄숙한 해석, 경제적 셈법은 잠시 내려놓자. 싸이는 귀국 직후 자신을 ‘월드스타 싸이’ 말고 ‘국제가수 싸이’로 불러 달라고 했다. 빌보드 순위와 상관없이 광장에서 감사콘서트를 연 그다. 그는 내가 보았던 과거의 모습과 전혀 변하지 않았다. 성공했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여전히 철들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는 광장에서 이제 우리들이 변하기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빌보드 차트 1위를 영영 못해도 좋다. 우리는 충분히 즐길 자격이 있다.

장혁진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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