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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재선 가능성 커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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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석한
미국 워싱턴 애킨검프 법률회사
시니어 파트너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유별나다. 전례로 보면 민주당 소속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패배를 예상할 수밖에 없는데도 실제론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43주 연속 8% 이상을 기록하는 등 여전히 높다. 주택 가격은 폭락했고 가구별 소득은 나아진 게 없다. 게다가 미국인 대다수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과거 어떠한 현직 대통령도 이러한 상황에선 재선 승리를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선례를 뒤집고 오바마는 오는 11월의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공화당 후보인 밋 롬니의 오산이다. 롬니는 경제 문제 하나만 물고 늘어져도 충분히 오바마를 침몰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을 오바마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투표 성격으로 만들려고 했다. 롬니는 유권자들에게 오바마가 지금까지 해 온 일을 살펴보고 그가 두 번째 임기를 맡을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전략은 논리적으론 맞겠지만 실제 유권자들의 표를 모으는 데는 실패했다. 왜냐하면 오바마보다 그 전임인 조지 W 부시의 경제정책을 비난하는 유권자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오바마 취임 당시 미국에선 매달 75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취임 첫해 420만 개의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그 뒤 2년 반 동안 연속 30개월 취업률을 계속 높이면서 모두 460만 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었다. 부시 치하에서 엉망이 된 경제를 물려받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을 만족시킬 만한 성적을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결국 이번 대선을 오바마 경제정책에 대한 심판의 장으로 만들려던 롬니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대신 대선의 초점은 두 후보의 미래 비전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선거 양상은 단박에 오바마에게 유리해졌다. 앞으로 어떤 후보가 경제를 더 잘 살릴 수 있을까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오바마는 오하이오·플로리다를 비롯한 주요 승부처에서 이겼다. 더구나 전국적으로는 물론 승부를 판가름할 주요 경합 지역에서 건강보험과 세금 문제에 이르는 핵심 현안은 물론 개인적인 매력 부문에서도 더 높은 점수를 얻었다.

 게다가 롬니는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전에서 이민·여성 등 사회 문제에서 보수적인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유권자들이 오바마의 경제 실정에 환멸을 느껴 자신의 보수적인 입장을 관대히 받아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오하이오·플로리다·버지니아 등 핵심 경합 지역의 히스패닉 및 여성 유권자 사이에서 더욱 큰 차이로 오바마에게 밀렸다. 이 3개 주의 선거인단을 차지하지 못하면 롬니의 대선 승리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3일(현지시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릴 첫 대선 후보 토론에서도 56% 대 29%로 오바마의 우세가 예상된다.

 이처럼 오바마가 대선에서 재선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도 의미가 상당하다. 알려진 대로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각별한 관계다. 양국의 어떤 전직 지도자가 쌓지 못했던 두터운 신뢰 관계를 구축해 왔다. 한국은 새로이 수립한 양국 지도자의 친밀한 관계를 십분 활용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 의회 통과를 이뤄내는 등 국익을 증진했다. 이러한 두 지도자의 긴밀한 관계를 의식한 미 고위 관리들도 한국의 견해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한국 문제를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이는 당연히 한국의 대미외교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그동안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긴밀한 한·미 관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긴밀한 양국 관계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도록 튼튼하게 다져놓아야 한다. 이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김석한 미국 워싱턴 애킨검프 법률회사 시니어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