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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척 아줌마의 '대마초 소동'

중앙일보

입력

정원이 딸린 저택에서 이웃과 차를 나누며 평온하게 사는 고운 아줌마 그레이스(브렌다 블레신) . 그녀에게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과 사업 실패라는 위기가 닥친다. 아끼던 집과 정원은 남의 손에 넘어갈 처지고, 급기야 남편의 정부까지 나타나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데…. 그러나 당장 꺼야 할 불은 마구 날아오는 청구서들을 막는 일. 결국 그녀는 팔을 걷고 나선다.

'오! 그레이스' (원제:Saving Grace) 는 갑작스럽게 경제적 위기에 처한 여인이 대마초 재배로 돌파구를 찾으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국 영화다.

언뜻 한 여인의 처절한 수난사거나, 대마초를 피우도록 부추키는 불온하기 그지 없는 영화가 아닌가 싶지만 이야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들은 시골 마을의 순진한 사람들이 엮어내는 경쾌한 코미디란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 그레이스가 '금보다 값나가는' 풀과 알콩달콩 대화하며 생의 온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노라면 '킥킥' 하고 웃지 않을 수 없지만 드라마의 분위기는 시종 따뜻하고 은은하다.

예컨대 그레이스가 대마의 성장 촉진을 위해 밤마다 하얀 조명탄을 터뜨리는 불법을 자행하지만 오히려 온 마을을 잔치 분위기로 바꿔놓으니 깐깐해보이는 마을 경찰마저 그레이스의 불법 행위를 슬쩍 눈감아줄 수 밖에.

또 다 키운 대마를 팔기 위해 홀로 런던의 '할렘' 으로 진출, 서툰 거래에 나선 그레이스의 모습은 연민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내게 한다.

배우들의 연기와 시나리오에 크게 의존하는 이 작품은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와 뮌헨영화제에서 각각 관객상을 받았다.

브렌다 블레신(55) 은 1996년 '비밀과 거짓말' 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연기파 배우. 나이답지 않은 발랄함과 편안한 여유가 조화를 이룬 그녀의 연기는 귀엽고 씩씩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 영국 콘월 마을의 자연 풍광도 영화를 풍성하게 해준다.

극이 진행되면 '그레이스는 과연 대마초로 위기에서 탈출할 것인가' 가 가장 궁금한 요소로 떠오른다. 하지만 소재의 도발성에 비해 마지막 출구는 다소 진부하고 무난한 길을 선택한 탓에 보는 이를 약간 공허하게 만든다. 나이젤 콜 감독의 데뷔작.

당초 이 영화는 지난달 26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극중 남.녀 주인공이 해변에서 대마초를 피우는 장면이 문제가 돼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아 상영이 늦어졌고 재심에서 대마초를 피우는 장면이 일부 잘렸다. 18세 이상 관람가. 23일 개봉.

■ Note

'진주만' '미이라2' 처럼 현란한 영화에 신물이 난 이들에게 잔잔한 재미를 줄 영화다. 또 속썩이는 남편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아내들이라면 엄청난 '용기' 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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