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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정여사' 때문에 업주들 골머리

미주중앙

입력

#. 풀러턴의 대형 한인 마켓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은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매장에서 1개월 전에 선풍기를 사갔던 고객이 선풍기 바람이 약하다는 이유로 제품 환불을 요구한 것이다. 직원은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규정상 환불이 어렵다고 했으나 고객은 막무가내로 언성을 높이며 반품을 요구했고 결국 마켓 측은 소란을 피하기 위해 환불에 응했다.

최근 오렌지카운티 곳곳의 한인 사업장에서 미국판 '정여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한인 업주들이 적지 않다.

'정여사'는 KBS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 중 하나로 구매한 상품을 환불 또는 교환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막무가내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블랙 컨수머(Black Consumer)'를 개그 소재로 하고 있다.

이들 '미국판 정여사'들은 식품 유통업체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업주를 애먹이고 있다. '정여사' 때문에 애로를 가장 많이 겪는 곳은 대형 한인 마켓들.

세리토스의 한 한인마켓 간부는 "분명히 삭인 홍어를 구입해 갔는데 며칠 지난 뒤 썩었다며 환불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식품 환불 규정에 따라 거절했더니 "못 바꿔 주겠다고 하면 '언론에 알리겠다' '주부들이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겠다' 등 갖은 협박을 해왔다"고 토로했다.

또 어느 마켓에서는 횟감을 구입해 간 고객이 회 두 세 점을 남기고 가져와 회를 먹고 배가 아프다며 새것으로 교환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접수됐다.

야채.과일 코너에서 좋은 것을 고른다며 마구 헤집는 바람에 상품에 손상을 입히는 경우도 다반사며 어떤 고객은 싼 제품 용기에 비싼 것을 슬쩍 끼워넣어 계산하는 얌체 짓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마켓 뿐 아니다.

라팔마의 C 전자제품 판매업체 신 모씨는 "컴퓨터를 구매해 얼마 지나지 않아 교환이나 반품을 요구하는 고객들이 많다"며 "대부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 이미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재판매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판 정여사'가 활개를 치는 것은 업체가 피해를 입으면서도 쉽게 나서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고 이를 악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소 측의 설명이다.

또 한인 고객들 중에는 유독 말이 통한다는 이유로 한인 업소 관계자들에게 막무가내로 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업소들의 하소연이다.

한 마켓 관계자는 "미국 업소에서는 길게 줄을 지어 있을 때 캐시어가 사적인 전화를 하며 늑장을 부려도 제대로 항의하지 않는 고객들이 유독 한인 마켓에서는 캐시어가 조금만 꾸물거려도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다"고 고개를 저었다.

대비책을 세우는 곳도 있다. 한 유통업체 대표는 "블랙 컨수머의 행태를 차단하기 위해 상품을 반품했을 때 제품의 누락.훼손을 3회 이상 한 고객에게 더 이상 반품 또는 교환해 줄 수 없는 '반품 거절' 조항을 내부적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정균 기자 kyun8106@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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