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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학교폭력 예방, 눈높이 처방이 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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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유정 사회 1부 기자

학교폭력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최근 충남 공주에서 한 고교생이 또래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다. 경기도에선 학교폭력 처리 실무를 맡던 교사가 가해학생들의 전학 처분에 자책감을 느끼고 자살했다. 이렇다 보니 “학교가 학교폭력에 미온적”이라는 지적과 “사회가 가해학생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주장이 동시에 나온다. 정말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이 없는 것일까.

 기자는 대전 태평중학교의 사례를 듣고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학교 폭력을 저질렀거나 그럴 위험이 높은 고(高)위험군 학생들이 학교폭력을 소재로 영화를 직접 만들고 이 작품을 공개하겠다는 말을 듣고서다. <본지 9월 24일자 24면>

 ‘취재에 응하겠다’는 학생들의 입장을 확인했지만 그들이 속내를 보여줄지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학생들의 얼굴이 밝았다. 신문용 사진 촬영과 얼굴 공개도 흔쾌히 동의했다. 무엇이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비결은 학생들에게 감춰진 재능을 살려낸 ‘눈높이 처방’이었다. 이 학교 생활지도부 허원준(31) 교사는 청소년들이 영화배우와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 지난 4월 영화반을 고안했다. 선도위원회에 수시로 불려가고 음주·흡연을 일삼던 아이들은 180도 달라졌다. 석 달간이나 결석하는 등 밥 먹듯 학교를 빼먹던 학생이 매주 토요일의 영화 촬영을 손꼽아 기다렸다. 영화 촬영 이후로 학교폭력에 연루된 학생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학생들은 “우리 스스로도 이렇게 변한 게 신기하다”고 했다. “열심히 연기를 배워 하정우 같은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이 생겼다”는 자랑도 했다.

 이런 큰 변화에 대해 허 교사는 “아이들마다 서로 다른 재능을 찾아서 칭찬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와 교사들에게 여전히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 준 게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 2월 발표한 2·6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다시 들춰봤다. ‘국가 수준의 학교폭력 데이터 수집’ ‘가해 학생에 대한 엄격한 조치 및 재활치료 지원’ 등 낯설고 엄격한 용어가 많았다. 학생들이 아닌 공급자인 공무원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대책들이다.

 학교폭력은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가해학생들에겐 ‘잘못한 행동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쳐줘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가해학생 특별 교육’ 같은 공급자 위주의 처방에서 벗어나 가해학생들과 눈을 맞추는 배려가 필요하다. 정부 대책에는 이들 학생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겉만 그럴듯한 대책에 집착하지 말고 태평중학교 같은 생생한 모범 사례를 발굴하고 확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태평중이 나온다.

이유정 사회 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