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성범죄 활개, 법원도 문제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9호 30면

자고 나면 또 성폭행·성추행 뉴스다. 벌써 몇 달째다.
웬만한 대형 사건이나 이슈도 한두 달 보도가 이어지면 독자들이 식상해 한다. 그래서 신문도 다른 이슈를 찾거나 개발해 보도하려 애쓴다. 그런데 성폭력 관련 기사는 예외인 것 같다. 이를 덮을 만한 다른 큰 이슈가 없었던 게 아니다. 성폭력 자체가 초대형 이슈여서다. 우리 주변 이야기이고, 누구라도 엽기적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신동재 칼럼

그럼 이런 성범죄가 그동안 뜸했다 최근 몇 달 새 집중적으로 일어난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잔혹한 몇 건의 범죄가 발생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언론 보도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나라는 성범죄가 쉼 없이, 매우 많이 발생하는 나라다. 통계 자료가 이를 보여준다.
2007년부터 2012년 6월까지 13세 미만 아동 대상의 성범죄 건수는 4367건으로, 하루 평균 2.17건꼴이다. 2007년부터 2011년 말까지 5년 동안 강간과 강제추행 등 성범죄 발생건수는 8만1860건이나 된다. 하루 44건꼴이다. 대한민국을 성범죄 공화국이라 불러도 대꾸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정부 당국은 엽기적인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온갖 대책을 내놓는다. 그럼에도 성범죄 발생건수가 증가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9000여 명의 잡히지 않은 성범죄 피의자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호시탐탐 여성들을 노리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별로 약발이 듣지 않는 대책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의학자인 강동우 박사의 접근법은 참고할 만하다. 요약하면 치료 가능한 대상자는 치료를 하고, 치료가 안 될 범죄자는 거세 내지는 장기간 격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법처리 과정에서 복수의 전문가가 성범죄자의 성격, 충동성, 반사회적 양상 등을 평가해 치료 가능 판단이 내려지면 심리·약물 치료로 재범률을 낮추게 한다. 치료가 불가능할 땐 초범이라도 더 엄하게 격리하고 화학적 거세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한국은 성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했다. 예컨대 지난해 성범죄자의 집행유예 판결 비율은 40.4%에 달했다. 판사들은 그동안 피고인이 반성한다거나, 초범이라든가, 술김에 우발적으로 저질렀다든가 하는 이유를 들어 집행유예를 남발했다. 전자발찌 채우고, DNA 뽑아봐야 뭐하는가. 법원에 가서 줄줄이 풀려 나오는 것을.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유럽도 성범죄에는 강력한 처벌을 원칙으로 한다. 99년형, 120년형 선고를 해외토픽의 시각으로만 보면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 법원의 책임은 작지 않다. 판사들은 우리 사회 일원이 아니고 달나라에서 온 사람들인가. 성범죄에 대한 일반인들의 법 감정과 너무 다르기에 하는 말이다. 올해 초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는 아동 성폭행과 관련한 양형에 대해 일반인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25%가 “살인죄보다 아동 성범죄를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답했다. 38%는 “살인죄와 똑같이 처벌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시민들 입장에선 법 감정을 도외시한 채 법률 자구에만 매달려 비현실적 판결을 내리니까 영화 ‘도가니’ 같은 사건이 벌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성범죄 전과자의 재범률은 60%를 훨씬 넘길 정도로 상습 성범죄자들이 즐비하다. 피해자와 합의하든, 가해자가 반성하든 일벌백계의 판결을 내려야 할 상황인 것이다.
법원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성적인 농담이나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성희롱 사건이 공·사석을 불문하고 도처에서 빈발하고 있다. 피자집 사장은 직위를 이용해 아르바이트 여대생을 성적으로 괴롭히다 죽음으로 내몰았다. 요새는 청소년 사이의 성범죄까지 급증하는 추세다. 이대로 가다간 성범죄 공화국의 늪을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인 일대 반성이 필요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