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불 넘어야 내수가 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쓸 돈이 없다

수출로는 한계 … 일자리 늘려야 쓸 돈 생겨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12일 열린 중년층 취업박람회.

20일 판교신도시 운중로의 한 빌딩. 목 좋은 1층 가게가 텅 빈 채 임대 안내문만 바람에 나부꼈다. 이 일대 14개 빌딩의 상가·사무실은 절반이 비어 있다. 내수(內需)가 바닥이다. 빈 상가는 한국 경제의 빈자리를 상징한다. 수출 부진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내수 몫인데 못 채우고 있다. 미래 불안, 자산 불안, 소득 불안 때문이다. ‘3불(不)의 늪’이다.

 미래 불안은 주 소비계층인 40~50대가 더 크다. 노후 걱정에 소비를 확 줄였다. 50대는 30대보다 소비를 고작 4% 더 할 뿐이다. 20년을 더 일했는데 마음 놓고 돈 쓸 여유가 없는 셈이다. 설상가상 재산의 전부이다시피 한 집은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빚을 내 집을 사고 뒷감당이 안 되는 ‘하우스푸어’ 사정은 더 딱하다. 6월 말 기준 가계 빚은 922조원에 이른다. 그렇다고 직장에 얼마나 더 붙어 있을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수는 600만 명에 이른다.

 3불의 해답도 내수에 있다. 내수의 주력은 일거리가 많은 서비스업이다. 일자리가 생겨야 불안도 준다. 이영 한양대 교수는 “찔끔찔끔이 아니라 확 방향을 틀어야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쓸 곳이 없다

선진국형 서비스업 키워야 돈 쓸 곳 많아져

요트족이 늘었지만 시설은 부족한 경기 전곡항 마리나.

올해 1000만 명 이상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의 대표 관광지 제주. 하지만 묵을 곳은 비싼 특급호텔 아니면 허름한 민박뿐이다. 20일 찾은 서귀포시의 한 민박집엔 낡은 화장실에 먼지 쌓인 브라운관 TV가 고작이었다. 제주 여행객 박기열(32)씨는 “비싼 호텔만 있고 값싼 민박은 너무 열악하다”며 “이러니 다들 제주 대신 동남아로 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제주는 자연문화유산으로 묶여 있는 지역이 많고 고도제한 때문에 몇 년째 숙박시설을 많이 늘리지 못했다.

 지방 나들이를 해도 오징어·양파·고추 같은 1차 농수산물 외엔 살 것이 없다. 여행·교육·의료 등 국내 서비스 산업 생산성은 주요 32개국 중 31위다. 열악한 국내 서비스 산업에 만족하지 못하니 해외로 나간다. 국내 거주자가 해외서 여행이나 쇼핑에 쓰는 돈은 한 해 20조원이 넘는다. 밖으로 나가는 내국인 소비를 끌어오겠다고 추진한 의료 영리법인과 영어학교는 지지부진하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제대로 쓸 곳을 만들어줘야 해외로 유출되는 소비를 국내로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쓸 사람이 없다

해외 가는 1억 중국 관광객 불러들여 돈 쓰게

서울 남산의 한옥 마을을 둘러보는 중국인 관광객들.

이젠 내수 개념을 바꿀 때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쓰는 돈도 짭짤한 내수다. 물건을 내다 파는 수출에서 사람을 불러들여 돈을 쓰게 만드는 내수로 가야 한다. 단초는 마련됐다. 중국인이 물밀 듯 한국에 오고 있다. 이들을 잡아야 한다. 중국인은 짠돌이 손님이 아니다. 소공동 롯데 면세점에 오는 중국인 VIP는 한 번 쇼핑에 1000만원을 쓰고 간다.

중국 쇼핑객은 명동뿐 아니라 강남·마포·동대문까지 휘젓고 다닌다. 마포구 합정·서교·연남동 일대엔 이들을 겨냥한 중소형 면세점이 40곳 넘게 생겨났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에서 중국인이 쓰고 간 돈은 올 들어 8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0%나 늘었다. 청담동 스튜디오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관에서 이틀간 고급 시계와 보석, 예단과 예물로 8000만원어치를 사가는 예비 부부도 있을 정도다.

 해외로 나가는 중국인은 2020년에는 한 해 1억 명에 달할 전망이다. 이 1억 명을 노려야 한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 미용과 연계한 의료서비스같이 다양한 고부가가치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한국경제연구원 공동기획

◆ 특별취재팀=서경호(팀장)·최지영·김영훈·김준술·장정훈·한애란·채승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