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돌아가 성공한 외국인 연수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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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 왼쪽부터 중국의 류톈타이, 인도네시아의 수나르토 무하마드와 쑨코노, 태국의 소파 댕그남, 우즈베키스탄의 사파라리에브 자혼기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 외국인 5명이 찾아 왔다. 외국인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서 일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코리안 드림'을 일군 사람들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주선으로 '연수생 출신 성공인사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이들은 "한국에서 번 돈은 사업 밑천이 됐고 한국에서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경영 노하우가 사업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 고향서 '상류 생활'=중국 산둥(山東)성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류톈타이(劉田太.40)는 2000년부터 3년간 충남 연기군 한양사료에서 일하며 돈을 저축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철광석 가공공장을 세웠다. 연평균 소득은 13만 위안(약 1600만원)에 달한다. 고향의 평균 근로자 임금의 10배가 넘는 돈이다. 6만 위안짜리 새집도 장만했다. 1995년 한국에 와서 2년간 일한 인도네시아의 수나르토 무하마드(35)는 지금 고향에서 900개가 넘는 좌석을 갖춘 수상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다. 매달 평균 4500만 루피아(500만원)를 번다. 자가용도 3대나 굴린다. 그는 "한국에서 한국 동료들과 낚시하던 기억을 살려 수상 레스토랑을 열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인 쑨코노(35)는 길거리에서 생선을 팔다가 '코리안 드림'을 꾸며 98년부터 2년간 한국에서 일했다. 지금은 고향에서 가구판매점을 운영 중이다. 아내도 식당주인이 됐다. 태국의 소파 댕그남(46)은 정미소와 돼지 축사를 운영하고 있다. 태국 대졸 사무직 평균 연봉의 두 배 이상을 번다.

우즈베키스탄의 사파라리에브 자혼기르(30)는 97년부터 1년 8개월간 한국에서 일하면서 1만2000여 달러를 모아 이 돈으로 빵공장을 세웠고 최근엔 잡화가게도 인수했다. 지금 수입은 한국에 오기 전의 15배에 이른다고 자랑했다.

◆ 마음고생 컸던 한국 생활=지금은 사업가로 성공한 이들이지만 한국에서의 마음고생은 적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성격 급한 한국인들의 기질에 적응하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소파는 "한국인들이 자꾸 말을 건네는 것을 싫어하고 심하면 욕설까지 한다"며 "한국으로 일하러 간다는 친지에게 '한국인들은 화가 나면 윽박지르고 언성도 높아지지만 본심은 착하니까 꾹 참아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류톈타이는 "한국 근로자들이 중국 노동자와 자신들의 월급을 비교하며 깔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한국에서 일하면서 받은 월급의 대부분을 고향으로 송금했다. 소파는 "다른 연수생들이 놀러다닐 때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고, 옷이나 생필품 등은 동료들이 쓰다 남은 것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부지런하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의견. 자혼기르는 "한국인들은 일할 때는 화끈하게 일하고 놀 때는 신나게 논다"고 평가했다. 무하마드는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를 경영자가 된 지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빨리 하라는 것이 단순히 일의 속도를 높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일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하라는 뜻"이라며 "나도 '빨리빨리' 하라고 직원들에게 말한다"며 웃었다.

류톈타이는 "직원들을 '가족'이라고 부르며 따뜻하게 챙겨주는 게 참 좋았다. 나도 중국에서 직원들을 가족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직원들 간의 협조도 잘되고 작업 능률도 올랐다고 그는 설명했다. 쑨코노는 "자기가 맡은 일이 끝날 때까지 퇴근하지 않는 한국 근로자의 모습을 보고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자혼기르는 "한 군데서 오래 일하면 자연히 대우도 올라가고 보람도 느낄 수 있다"며 "한국에서 일하는 시간이 쉽지 않겠지만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게 외국인 근로자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18일 자신들이 일했던 공장을 방문하고 22일 '외국인 근로자와 함께하는 어울림 대잔치'에 참석한 뒤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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