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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대형사업 줄줄이 무산·보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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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안시 성성동에 사는 김진원(가명)씨. 김씨는 국제비즈니스파크 때문에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호숫가에 카페를 운영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고 지난 6년간 은행 이자를 갚기 위해 지옥 같은 삶을 살아왔다. 2억5000만원을 대출받아 집을 짓고 남은 땅에 카페를 지을 계획이었지만 개발행위제한구역으로 묶이면서 재산권행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6년간 납부한 이자만 8500만원에 이른다.

#2. 지난 2007년 말 천안시 백석동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이정화(가명)씨는 요즘 들어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분양 당시 인근에 2020년까지 국제비즈니스파크가 들어서고 2009년에는 단지 앞에 경전철역이 생기는 등 개발수요가 많다는 설명에 큰 기대를 가졌지만 국제비즈니스파크가 무산된 데다 경전철마저 보류됐기 때문이다. 교통여건과 도시개발 측면에서 유리한 입지를 선택했다는 판단의 책임은 자신의 몫이 됐다.

670억원 쓴 비지니스파크 사업 청산 절차 착수

외부자본을 유치해 추진하려던 천안의 미래성장동력 핵심 사업들이 줄줄이 무산되거나 지연되면서 개발지역 주민들에게는 피해를, 기대에 부푼 시민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대외적인 경제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데다 재정능력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해 온 결과다.

천안시는 최근 천안국제비즈니스파크 조성사업법인 청산에 들어가는 등 마무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사업 포기를 발표한 지 8개월, 대우건설컨소시엄에 사업계약 해지를 통보한 지 4개월 만이다. 천안시는 사업시행을 맡은 천안헤르메카개발㈜의 청산이 대우건설컨소시엄 구성원의 반대로 어렵게 되자 소송을 통해 매듭짓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하고 지난달 초 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일단 마무리 절차에 들어갔지만 670억원이 넘는 토지·자본금·이행보증금을 회수해야 하는 숙제를 남겼다. 소송 결과 승소하더라도 그동안 들어간 비용과 시간을 감안하면 시로서도 큰 손실이다. 무엇보다 보상을 기대하고 이미 토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은 주민들은 어디에도 하소연 할 길이 없게 됐다.

성무용 시장의 공약이기도 한 천안국제비즈니스파크 조성사업은 민간자본과 기술력, 행정기관의 개발사업 노하우를 접목시켜 우수한 정주환경을 조성하고 열악한 기업활동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6조4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시는 사업이 무산되자 4개 구역으로 지역을 나눠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난개발과 특혜시비를 불러올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시는 1구역은 지주환지 방식(부대동 일대)으로, 2구역은 민간사업자가 개발하는 방식(성성동 일대)으로, 나머지 3, 4구역은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업성저수지(업성동·부대동 일대) 인근을 매입해 당초 국제비즈니스파크를 축소한 형태로 컨벤션센터와 호텔을 짓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경전철 시 분담금 1000억원 마련 길 막혀 보류

민간제안사업(BTO방식)으로 2006년부터 추진해온 경전철 사업도 보류됐다. 급증하는 인구와 자동차로 도심지역 교통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친화적인 신교통시스템 도입을 목적으로 추진해온 4667억원 규모의 대형 사업이다. 예정대로라면 2011년 착공해 2015년 개통해야 하지만 아직 기획재정부의 민간투자사업심의도 받지 못한 상태다. 2년 전 도시철도(경전철) 건설을 위한 ‘천안시 도시철도 기본계획’은 국가교통위원회 심의를 마쳐 관보(국토해양부장관)에 고시됐지만 재원확보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가 도시철도 도입 기준 인구수를 50만 명에서 70만~100만 명으로 상향 조정한 데다 1000억원에 이르는 재원분담금을 확보할 길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다. 토지보상비(208억원)를 합쳐 1000억원의 분담금(전체 사업비 20%)을 아산신도시 탕정지구와 천안국제비즈니스파크 개발 지역에서 거둬들여야 하지만 국제비즈니스파크는 무산됐고 탕정지구는 도로 개설 쪽으로 징수 협의가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천안시가 1000억원이라는 막대한 부담금을 안고 추진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이다.

투자자 못구한 천안민자역사 개발 허가 취소

10년을 끌어온 천안민자역사 개발 역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에 따라 지난 2002년 기존 역사를 헐고 임시역사를 지어 사용중이어서 천안역 이용객과 주민들의 불편만 기약없이 이어지게 됐다. 천안시는 2003년 사업 주관사를 선정하고 2007년 건축허가를 냈지만 올해 들어서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지난 3월 천안민자역사의 건축허가를 취소한 데 이어 코레일도 4월 주관사인 ㈜신한과 ㈜남성에 협약 취소를 통보했다. 코레일은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이지만 시행사와 주관사와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향후 사업추진이 가닥을 잡을 지는 미지수다.

이밖에 8년째 답보상태에 있던 4280억원 규모의 천안복합테마파크타운 조성 사업도 경기침체로 사업자 선정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천안문화광장 조성 사업 역시 사업비(토지보상비 60억원, 시공비 100억원) 조달 어려움 때문에 7년째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정병인 천안아산경실련 사무국장은 “시민을 위한 공약사업이라고 하더라도 시의 재정부담과 사업성을 철저히 분석하지 않고 추진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다”며 “특히 대규모 민자사업일수록 민간이 제안한 사업을 그대로 적용시키려 하지 말고 더욱 철저히 검토, 분석해 공공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업은 과감히 접거나 공공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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