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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국가 신용등급 삼국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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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이성한
국제금융센터원장

외환위기를 맞이했던 15년 전, 한국의 신용등급은 속절없이 추락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두 달 사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무려 10단계나 하향 조정했고 주요 신용평가 3사의 한국 신용등급은 모두 투기 등급이 됐다. 당시 아시아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신용등급은 싱글 A 수준을 유지했고 일본은 트리플 A 등급을 받고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일본 경제의 버블이 꺼지기 시작했지만 일본 기업의 위세는 여전했다. 고가 전자제품 시장은 소니와 파나소닉이, 자동차는 도요타와 혼다 등이 세계시장에서 명성을 날렸다. 97년 당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소니의 15분의 1에 불과했다. 이때만 해도 한국이 일본의 신용등급을 추월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2012년 삼국의 신용등급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이 처음으로 일본의 신용등급을 추월했고 중국과 일본의 신용등급이 같아졌다. 향후 신용 전망으로만 본다면 중국이 일본보다 더 우월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은 2009년 5월 무디스를 끝으로 신평 3사 모두로부터 트리플 A등급을 박탈당했다. 반면 중국은 2010년 무디스, S&P가 연달아 더블 A로 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물론 국가 신용등급이란 것이 한 국가의 채무상환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채무상환 능력은 그 경제의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3개 신평사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은 한국 경제 전반의 위상이 이전보다 한 단계 높아졌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15년 동안 이들 삼국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난 걸까. 일본은 부동산 버블의 붕괴 이후 금융회사의 부실화, 경기 침체, 국가 재정 악화라는 고통을 경험했다. 인구 구조도 심각한 고령화 문제에 직면했다. 이제 ‘일본화(Japanification)’라는 용어는 활력을 잃은 노쇠한 경제를 대표하는 것이 돼 버렸다. 일본은 현재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23.2%를 차지하고 있고 장기 디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중국은 1~2년 전까지 연 10% 내외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과시하며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한국도 이번 금융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과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무디스는 크게 경제력, 제도적 안정성, 정부 재정 능력, 이벤트 리스크에 대한 취약성을 국가 신용등급 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최근 평가를 보면 한국은 경제력에서, 중국은 정부 재정 능력에서, 일본은 제도적 안정성의 측면에서 각각 가장 높은 등급을 받고 있다. 여기서 경제력은 1인당 국민소득, 경제구조의 다양성 등을 측정한 개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7년 1만3500달러에서 2011년 말 3만1714달러로 성장했다. 일본의 3만4740달러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본은 높은 GDP에도 불구하고 낮은 경제성장률, 고령화에 따른 생산능력 저하 등으로 인해 경제력 부문에서 최고 등급을 받지 못했다. 대신 법률 시스템 등 국가의 인프라 측면을 보는 제도적 안정성에서는 높은 등급을 받았다. 중국은 낮은 정부 부채비율(31%), 위기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재정상황 등이 반영돼 정부 재정 능력에서 높은 등급을 받았다.

 앞으로 삼국의 신용등급은 어떻게 될까. 중국은 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 등 성장의 장애물들을 잘 넘어갈 경우 당분간 완만한 상향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현재의 하향 추세에서 반전될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무엇보다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높은 정부 부채 문제다. 230%에 달하는 정부 부채비율은 그리스(161%)에 비해서도 훨씬 높다. IMF가 발표하는 169개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신용등급 변화는 물론 관심의 대상이다. 특히 트리플 A 국가였던 일본의 추락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때 탄탄했던 경제도 쉽게 추락할 수 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높은 신용등급은 견고한 펀더멘털에 뒤따라오는 결과물일 뿐이다. 탄탄한 재정건전성, 경상수지 흑자 유지, 안정적인 성장잠재력 확보 등 기본에 충실하다 보면 최고 등급인 트리플 A에도 한 발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

이성한 국제금융센터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