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내 고정환율제 안 바꾸면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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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중국이 앞으로 6개월 이내에 현행 고정환율제도(페그제)를 개편하지 않을 경우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것이라고 1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환율 조작국이란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통제하는 국가라는 뜻으로 미국 정부는 1994년 이후 환율 조작국 지정을 한 적이 없다. 미국의 관계법령은 미국 정부가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된 나라와 환율제도 개선을 위한 협상을 해야 하며, 상대국이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보복관세 등의 대응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이날 의회에 제출한 상반기 보고서에서 중국의 고정환율제도에 대해 "세계 시장을 크게 왜곡시키고, 가격 체계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난하며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중국이 현행 환율제도를 더욱 유연하게 바꾸지 않을 경우 미국과의 무역에서 부당한 이득을 얻기 위해 환율을 조작한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앞으로 6개월 이내에 위안화의 환율 흐름이 중요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것"이라며 "10월 하반기 보고서 발표 때까지 중국 외환시장의 변화를 면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 인민은행 등은 이날 미국의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향후 양국 간의 마찰이 예상된다. 중국은 94년 이후 위안화 환율을 달러당 8.27~8.28위안에 묶어두는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따라 위안화가 실제 가치보다 계속 낮게 평가되면서 중국산 제품의 달러화 표시 수출 가격이 유리해져 미국시장에서 엄청난 무역흑자를 거두고 있다.

홍병기 기자

[뉴스 분석] 미, 위안화 평가절상 최후통첩
중, 환율 변동 폭 확대 가능성

미국 정부의 이번 발표는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상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한번 밝히면서 '6개월'이라는 시한을 설정한 최후 통첩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처럼 시한이 제시됨에 따라 그동안 시장에서 제기됐던 위안화 조기 절상설은 수그러들고 앞으로 6개월 동안 두 나라가 물밑에서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일 전망이다.

여기에는 양국의 관계 악화보다 실리를 챙기자는 미국 측의 계산이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환보유액이 6000억 달러가 넘는 중국이 위안화 절상과 함께 미국 국채를 팔겠다고 나설 경우 미국 경제가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중국의 환율 조작을 직접적으로 지목하지 않는 대신 중국이 자발적 형태로 환율제도를 바꾸도록 압박을 가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게 월가 주변의 분석이다.

미국이 최근 섬유 쿼터를 부활해 중국 제품의 수입을 규제한 것도 환율 개혁에 대한 간접적인 압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환율제도 개혁은 주권국가의 내부적 문제라는 주장을 내세워 미국의 압력에 버틸 것으로 예상된다. 또 미국이 거세게 압박해 올 경우 환율 변동폭을 소폭 확대하는 조치 등으로 김빼는 작전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위안화가 절상되면 아시아 통화의 동반 강세를 불러와 원화도 절상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위안화 절상 폭이 예상보다 크고 원화도 비슷한 수준으로 절상될 경우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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