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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성철 스님이 준 법명 뜻 ‘쓸모없는 이 돼야 득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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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성철 큰스님의 속가 딸 불필 스님이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를 내고 그간 감춰두었던 출가 사연, 수행 이력 등을 들려주었다. 스님은 “책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손가락에 굳은 살이 박이도록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썼다”고 말했다. 스님 뒤로 성철
스님 사진이 보인다. [합천=송봉근 기자]

한국 현대 불교, 최고의 선승(禪僧) 중 한 명으로 추앙받았던 성철(性澈·1912∼93) 스님. 그의 속가(俗家) 딸 불필(不必·75) 스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성철의 권유에 따라 1957년 출가한 지 50여 년 만이다. 지독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치열한 수행 인생을 압축한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김영사)를 냈다.

 18일 오후 경남 합천 해인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 스님의 처소 금강굴. 아담한 체구의 스님은 목소리가 차분했다. 하지만 인륜을 등지고 영원한 자유를 찾아온 독행독보(獨行獨步), 꼿꼿한 정진 이력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눈빛이 반짝였다. 형형했다는 성철 스님의 눈빛이 그랬을까.

 스님은 그동안 철저하게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다. 아버지가 딸을 출가시키고 손수 법명까지 지어준 극적인 출가 사연, 이후 어머니까지 출가한 가족사만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젊은 날의 호기였는지, 이후 스님의 생사 공부는 어땠는지 베일에 싸여 있었다. 만나 보니 스님은 아버지 못지 않은 치열한 수행자였다.

 - 그동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출가 얼마 후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닌 성철 큰스님이 ‘앞으로 어떤 도인이 되겠느냐’고 물었다. 숨어 사는 도인은 중근기(中根機·중간 정도의 자질), 중생을 제도하는 도인은 명리승(名利僧), ‘내 떡 사소’ 하는 도인은 가장 하근기,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는 도인은 상근기라고 하면서다. 숨어 사는 도인이 되겠다고 했다. 심산유곡에서 감자나 캐어 먹는 못난 중노릇을 하고 싶었다. 울산 석남사 주지 자리를 마다한 것도 그때의 결심 때문이다.”

 - 중생과 호흡하며 제도하는 일도 의미 있지 않나.

 “법정 스님이 해인사 소소산방에 계실 때 한 번은 출가 동기를 묻더라. ‘생사를 해탈한 영원한 대자유인의 길을 가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이번엔 내가 물었더니 자기는 보살행을 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보살행은 송장 타고 바다 건너는 일’이라고 말해줬다. 그게 인연이 돼 이후 법정 스님은 출가하러 온 사람들을 여기 금강굴이나 석남사로 많이 보내주셨다.”

1967년 합천 청량사 시절의 불필 스님(앞줄 오른쪽). 왼쪽은 함께 수행한 현각스님. 뒤에는 성철 스님. [사진 김영사]

 역시 출가 사연이 궁금했다. 스님은 책에서 밝혀 놓은 대로 수재들만 갔다는 진주사범학교 2학년 때 성철 큰스님을 만난 사연을 들려줬다. 행복에는 영원한 행복과 일시적인 행복이 있는데 부처님을 믿으면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대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큰스님의 말에 마음이 결정적으로 움직였다는 얘기였다.

 - 한국전쟁 체험도 영향을 미쳤나.

 “아홉 살 때 언니가 죽었다. 그때부터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생각을 항상 했던 것 같다. 특히 한국전쟁 때는 곳곳이 시체의 산이었다. 죽음은 저런 모습이구나, 무상을 느꼈다. 그래선지 언제부턴가 스스로 전생부터 화두 참선하는 승려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다음 생에는 아버지를 더 잘 모시겠다는 대목이 책에 나오는데.

 “아버지라는 생각은 언니가 죽을 때 사라졌다. 아버지라고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 큰스님은 아무리 잘 모시고 싶어도 받질 않으시니 그럴 수 없는 분이었다. 다음 생에 해인사 방장(方丈)이 돼서 스님으로서 큰스님을 잘 모시겠다는 얘기다. 세속 인연에서 벗어난 얘기다.”

 - 출가를 후회한 적은 없나.

 “내일이 없는데 시간을 헛되이 많이 보냈구나, 더 빨리 출가하지 못한 걸 후회한 적이 한 번 있다.”

 - 평생 수행 끝에 원하던 행복은 얻으셨나.

 “사력을 다해 자기 공부를 하는 것이지 공부의 상태를 드러낼 필요는 없다. 정진하다 보니 내 경계는 이렇습니다, 얘기하는 것은 바보 짓이다.”

 - 법명 불필(不必)은 ‘필요 없는 딸’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큰스님이 ‘하필(何必)을 알면 불필의 뜻을 알 것’이라며 지어주셨다. 세상에 아주 쓸모 없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도를 이룰 수 있다는 뜻에서 지어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름값을 하려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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