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떠나고 싶다"…교수 자살까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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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일할 기회가 있다면 이 땅을 떠나고 싶다.” 국내 과학자 10명 중 7명(72%)이 토로하는 심정이다. 더 좋은 연구환경과 삶의 여건을 찾겠다는 이유에서다.

 “고국으로 돌아가고는 싶다.” 미국 거주 한인 과학자 중 66%가 품고 있는 생각은 거꾸로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의 과학자에 대한 낮은 보수와 열악한 연구환경 등이 발목을 잡는다”며 귀국을 주저한다.

 본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 과학·산업 전문 인터넷뉴스 대덕넷(www.hellodd.com)이 공동으로 지난 12일부터 닷새간 재미(在美) 한인 과학기술인 226명과 국내 과학인 293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국내 과학계의 어두운 현실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과학벨트 조성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올 5월엔 기초과학연구원을 출범시켰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핵심 연구인력 유입을 위한 ‘브레인 리턴(Brain Return) 500’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이 될 국내외 과학 인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아주 못하고 있다(재미 24%, 국내 37%)’거나 ‘못하고 있다(재미 43%, 국내 42%)’는 응답이 주류였다. 국내외 과학자의 70% 이상이 한국 과학기술정책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과학계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부조리 때문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지적이다. 연구에 매진할 수 없는 풍토, 연구비 관리에 대한 비현실적 규정과 감사, 연구 의욕을 꺾는 관료주의, 비정규직 연구원의 증가, 이공계 기피 현상 등이 그것이다.

 최근 국내 스타 과학자 세 명의 잇따른 자살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고 과학계는 보고 있다. 지난 7월 숨진 정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지난해 4월 목을 맨 KAIST 생명과학과 박태관 교수, 2010년 2월 아파트에서 투신한 서강대 물리학과 이성익 교수 모두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연구에 전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면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것이다.

 한국 과학계의 문제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올 2월 작성한 지난해 우리나라 과학기술혁신역량(COSTII) 종합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10위다. 구체적으로 연구개발비 투자 4위, 유무선 인터넷 가입자 수 1위 등이다. 하지만 연구실적을 나타내는 ‘연구원 1인당 SCI 논문 수 및 인용도 부문’에서는 2008년 이후 4년 연속 꼴찌(30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연구비 지원·관리 체계가 미흡해 투자 대비 성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과위 정책조정전문위원장인 KAIST 바이오뇌공학과 이광형 교수는 “2008년 11조원 규모이던 연구개발(R&D) 자금이 이후 매년 1조원씩 추가되고 있는데, 지금 같아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으로 헛돈을 쓰는 셈”이라고 말했다.

◆브레인 리턴 프로젝트

기초과학 진흥을 위한 정부의 해외인재 유치 사업. 2017년까지 과학벨트 핵심인 기초과학연구원에 상위 1%의 저명·신진 과학자 등 최고 수준의 해외 인재 500명을 유치할 계획이다.

탐사팀=최준호·고성표·박민제 기자,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미주 중앙일보=정구현(LA)· 강이종행(뉴욕)·유승림(워싱턴) 기자, 김보경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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