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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빤 ‘클래식 스타일’이란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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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호 27면

글쓴이는 서울 강북 마포구의 한 건물 지하에서 혼자 지낸다. 줄라이 홀이라 이름 붙인 이 공간에는 3만 장이 넘는 클래식 LP가 쌓여 있다. [사진 김선규]

지난달이던가. 이어령 선생의 전화를 받았다. 대뜸 그러신다. “학술행사를 하려는데 자네 싸이를 좀 섭외해 줄 수 있겠나?” 어이쿠, 음악을 좋아하고 방송 동네에서 활동하면 다 통한다고 여기셨나보다. 나는 쩔쩔매며 설명해야 했다. 그런 연예인들 몸값이 얼마나 비싼지를, 방송에서 일한다고 다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선생은 껄껄 웃으며 “그렇겠지” 하고 물러났다. 그런데 한류에 관한 한·중·일 비교문화 토론회라는데 숱한 아이돌 스타를 놔두고 갑자기 웬 싸이일까, 이상했다.

詩人의 음악 읽기 싸이 열풍

같은 즈음에 한 방송사에서 전화가 왔다. “강남스타일이 대인기잖아요. 원인 분석에 대한 인터뷰를 부탁드려요.” 생전 강남 언저리에 갈 일이 없는 터라 이런 말로 사양을 했다. “강남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선망의 대상일 수는 있겠지만 뭐 새삼스럽게 방송을 하나요?” 전화 저쪽의 방송작가가 뭐라고 열심히 설명하는데 잘 알아들을 수 없었고 어쨌든 강남권 문화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무뚝뚝하게 요청을 거절했다.

‘강남스타일’이 가수 싸이의 히트곡 제목이라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두 차례의 통화 모두 피차 남의 다리를 긁적이는 엉뚱한 대화였던 것이다. 혼자서 배를 잡고 웃었다. 라디오 진행에 TV 출연도 종종하건만 정작 내게는 TV도 라디오도 없다. 베스트셀러를 쏟아내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이 한국말로 쓰인 책은 죽어라 읽지 않는 것과 비슷한 심사일 것이다. 돌아가는 판세를 모를수록 다른 생각이 가능하다는 단순한 이치. 현재형의 흥미성에 매이고 싶지 않은 지적 허세.

더 이상 모를 수 없게 그 ‘스따일’의 위세는 엄청나다. 놀라운 유튜브 조회 수나 빌보드 차트 순위가 문제가 아니다. 북한 수해물자 지원이 불발된 일로 한완상 전 통일원 장관과 인터뷰를 하는데 그 노경의 사회학자가 계속 ‘김정은 스타일, 이명박 정부 스타일, 정책 스타일, 대화 스타일…’ 방송 중에 폭소를 터뜨릴 뻔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 프로에서 인터뷰하는 민주당 박영선 의원 역시 ‘문재인 스타일, 개혁진영 스타일’ 식으로 스타일을 연발한다.
아키타이프(archetype)다. 한 인기가요가 생각과 표현의 한 가지 원형을 제공한 것이다. 어떤 칼럼니스트의 강남스타일 인기 분석에도 유사한 설명이 나온다. 말 달리는 동작을 흉내 낸 춤, 어떤 문화권에서도 동일한 동작을 연상하게 되는 말춤의 고안이 보편성을 창안했다는 것이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나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무지크’의 주선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지금 이 시대에 클래식 음악은 어떤 원형, 어떤 보편성을 제공하고 있는 걸까. 문화통 전문기자로 유명한 조우석은 굿바이 클래식이라는 책을 통해 클래식 음악의 사망진단서를 쓴 바 있다. 바흐·베토벤류의 클래식 음악이 인류보편의 표준음악이라는 생각은 대단히 잘못된 서구 추종적 사고라는 것이다. 문명과 비문명 혹은 야만과 개화로 구분하는 이분법 잣대에서 오용되고 과잉평가된 대표적 사례가 클래식 음악이라고도 했다. 그는 클래식의 음악철학이 독선과 사디즘에 기초하고 있다는 독설까지 퍼부었다.

‘강남스타일’이 싼티나는 B급 문화현상이라고 아무리 깎아내려도 소용없다. 클래식 음악은 결코 사망한 것이 아니고 고급 문화에 대한 보편적 욕구에 부응하는 본격 예술장르라고 추어올려 봐도 역시 소용없다. 도스토옙스키나 헤르만 헤세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청소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클래식 음악은 이제 소멸의 스완송을 부르는 단계에 직면한 것 같다. 대중음악과의 비대칭적 공존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클래식 음악의 위축은 객관적 사실이다. 재기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으며 굳이 그게 아니라고 부정할 필요조차 없다. 칸트·헤겔에서 미셸 푸코까지 인류가 아주 복잡하게 사고하는 방식으로 쌓아올린 300년간의 문명이 종언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클래식 음악을 열심히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문명의 문화적 양상을 증언하는 최후의 인간군이다. 그러고 보니 멋지지 않은가. 가령 영화 ‘아일랜드’에서처럼 전 인류가 사이보그 혹은 유전자 복제품으로 존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극소수 아날로그형 존재로 살아가는 일이. 모두가 펄쩍펄쩍 말춤을 즐기고 있을 때 화성과 대위의 위대한 건축물을 영위하는 일이.
여인들아, 오빤 클래식 스타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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