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워치] 경기부양에 들뜬 증시, 인플레 부작용은 잊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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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만
NH-CA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외국인의 매수와 국내 기관의 주식투자 확대로 주식시장이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어느덧 코스피 지수 2000선을 바라보게 됐다. 그렇지만 추가 상승을 자신하기 어렵다. 실물 경제의 침체가 예상보다 깊어서다. 침체를 막기 위해 온 세계가 나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국채 매입 등 유동성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은 3차 양적완화(QE3)를 시행했다. 중국은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도 금리인하 등을 비롯해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내놨다.

 각국 정부의 부양책 덕에 주가가 오른다면 괜찮은 걸까. 아니다. 경제 정책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반드시 존재한다. 경기부양책을 썼던 과거 사례를 봐야 한다. 이를 거울삼아 시장에서 나타날 변화를 예측하고, 혹시나 나타날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1997년 말부터 99년까지의 아시아 외환위기를 떠올려 보자. 동남아시아 국가와 한국·일본 등이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실물경제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전 세계 경기의 동반 침체를 막고자 기준금리를 연 5.25%에서 4%로 내렸다. 당시 배럴당 20달러를 넘던 유가(미 서부텍사스유 기준)는 10달러 선까지 떨어졌고, 99년 정보기술(IT) 붐과 함께 위기상황을 극복했다.

 2000~2001년 IT 버블 붕괴와 9·11 테러 사건 때,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5%에서 1%로 10차례나 내렸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시장에 돈이 너무 많이 풀리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유가는 2008년 배럴당 149달러까지 치솟았다. 신흥시장은 인플레이션의 고통을 겪었다. 이때 만들어진 부동산 버블은 ‘리먼 사태’(마침 4년 전 오늘이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갔던 날이다)를 잉태하게 됐다.

 결국 2008년 리먼 사태가 터졌다. 세계는 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침체를 경험하게 됐다. 실물경기 침체는 유가로 이어졌다. 150달러에 육박하던 기름값은 3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이어진 1, 2차 양적완화는 리먼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돈이 풀리자 유가는 다시 상승세를 탔고 지금은 10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발 재정 위기가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 세계는 유럽·중국의 경기부양책을 기다리고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나 세계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현재 유가가 실물 경기 침체에도 100달러에 근접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실물 수요가 극히 부진한데도 유가는 좀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주가 또한 전 고점에서 그리 낮지 않은 곳에 머물고 있다. 이 상황에서 QE3가 작동되면 유가가 너무 급등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고용과 내수의 부진 등 경기침체의 고통도 크지만, 경기부양에 따른 잠재적 인플레이션도 중·장기적 악재임을 과거 사례에서 보듯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증시는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오르는 모습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도 기업과 가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체력을 갖췄는지를 봐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주가는 다시 하락으로 방향을 틀 것이다. 다만, 지금은 기대감에 눈이 멀어 체력 상태를 분별하지 못한다. 기대감이라는 연기가 걷히는 시점은 내년 이후나 될 것 같다.

양해만 NH-CA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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