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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로맨스 '타인의 취향'

중앙일보

입력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상대방의 어떤 점이 좋게 느껴진다, 는 극히 개인적인 문제 아닐까. 예를 들어서 특정한 버릇을 좋아한다던가, 혹은 어떤 표정을 좋아한다던가 말이다. 결국 좋다는 감정은 개인의 취향에 달려있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취향이 맞는 사람들끼리만 은밀하게 통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타인의 취향'은 독특한 프랑스 영화다. 여성감독 아녜스 자우이가 각본과 배우, 그리고 감독까지 1인3역을 소화한 이 영화는 프랑스에서 꽤 반응이 좋았던 작품이다. 프랑스에서만 3백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타인의 취향'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된 바 있기도 하다. 어떤 영화인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타인의 취향'은 말 그대로 조금 복잡한 로맨틱 코미디다. 그런데 여느 할리우드 영화와는 겉모습이 조금 다르다. 중년남자가 등장하고, 엉뚱하게도 한 보디가드가 어떤 여성을 만나 좋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중소기업 사장인 카스텔라는 아내로부터 매일 구박받고 부하직원에게 잔소리만 듣는다. 그는 우연히 아내와 함께 연극 관람을 하게 된다. 카스텔라는 주연 여배우 클라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카스텔라는 클라라를 영어교사로 얼핏 만난 적이 있던 처지. 그날 이후 카스텔라는 열렬한 연극팬이 된다. 한편, 카스텔라의 경호를 맡은 전직경찰 출신 프랑크는 바텐더로 일하는 마니라는 여성과 잠자리를 한다. 마니는 마리화나를 판매하기도 하며 카스텔라의 부인 운전기사인 브루노와 잠자리를 한 경험도 있다.

'타인의 취향'은 철저하게 서로 다른, 그리고 다를 수 밖에 없는 개인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특정 취향, 내지는 고집을 간직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취미와 교양수준, 그리고 기호와 타인의 외모에 관한 성향까지 서로 다르다. 생각해보면 끔찍한 일 아닌가? 영화는 이렇듯 다양한 개인들이 누군가에 대해 좋은 감정을 느낄 때 상대방이 그 감정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거부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예를 들어 클라라라는 여성은 콧수염 기른 남자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녀를 짝사랑하는 카스텔라는 억울하게도 콧수염을 기르고 있다. 그러니 뭔가 잘 진행되질 않는다. 게다가 클라라는 예술에 대한 교양이 없는 사람을 눈뜨고 못보는 처지다. 카스텔라가 그렇다. 한편, 프랑크라는 남자는 여자에게 호되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데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여성을 본능적으로 혐오한다.

그와 잠자리를 한 마니는 자신에게 명령하는 남자라면 딱 질색이다. 그러니 잘 안된다. 서로 다른 취향을 지닌 개인들이 서로 얽히면서 벌어지는 드라마를 '타인의 취향'은 꼼꼼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전개해간다. 영화는 중간중간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연상케하는 점도 있다. 다변(多辯)의 영화라는 점, 그리고 타인의 애정을 구하는 개인들 이야기를 지적인 교양을 적당히 섞어가면서 풀어내는 방식은 비슷하다. 하지만 '타인의 취향'은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뻔한 멜로영화로 향하고 있다. 고독과 단절을 경험한 이들이 조금씩 사랑의 실체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해외 평단에선 '타인의 취향'에 대해 "빈틈없는 로맨틱 코미디" "아녜스 자우이 감독의 우디 앨런적인 코미디"라는 호평을 한 바 있다. 감독 아녜스 자우이는 배우 장 피에르 바크리와 커플로 유명하다. 영화에서도 장 피에르 바크리와 함께 각본을 쓰고 공동주연을 맡고 있기도 하다. 알렝 레네 감독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한 바 있는 아녜스 자우이는 '타인의 취향'이 감독 데뷔작이며 이 영화로 세자르상에서 작품상 등을 받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감독은 글쓰기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면서 "글쓰기가 모든 것을 변화시키지는 못하지만, 현실적 영향을 지닌 것은 분명하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타인의 취향'에서도 미묘한 개인의 감정, 그리고 현실의 아이러니함을 살리고 있는 대사들은 감칠맛난다. 이 영화가 최근 프랑스영화의 수준을 한차원 높여주진 못했지만, 적어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타인의 취향'은 영화음악 선곡도 뛰어난 편이다. 슈베르트와 모차르트, 그리고 팻 메시니에 이르는 영화음악은 서로 다른 모양새의 취향 문제로 갈등을 겪는 남녀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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