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민주통합당 경선이 끝나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뜻을 내비치면서 야권후보 단일화 게임이 불가피하게 됐다.
특히 정당 기반이 없는 안 원장이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에 고심하고 있음이 그를 만난 인사들에 의해 드러나고 있다.
안 원장은 지난달 10일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과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놨다고 김 전 의원이 전했다. 이에 김 전 의원은 “안 원장에게 ‘민주당은 확장에는 무리가 따라도 없어질 정당은 아니다. 양측이 콤비네이션(조화)을 맺어야 한다. 경쟁 상대나 적이 아니다’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그간 안 원장과 접촉한 민주당 인사들은 이렇게 당과 안 원장 간의 파트너십을 강조하곤 했다.
양측이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든 대선까지 남은 90여 일 동안 안 원장과 민주당 후보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 뒤 서로 유리한 시점에 단일화를 추진하려 할 것이며, 고리는 안 원장과 민주당의 ‘공동정부’가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해 연말 민주통합당 창당 이후 또 한 번의 ‘야권발 정계개편’이 예고된 셈이다.
단일화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관건은 결국 지지율이다. 대선 후보 등록(11월 25, 26일)을 앞둔 어느 시점에 개시될 것으로 보이는 협상엔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우선 안 원장이 민주당 후보를 크게 앞설 때다. 민주당은 안 원장에게 후보직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명분이 없어진다. 단일화 협상은 양측의 정치적 담판으로 가려질 수 있다. 대신 ‘안철수=대통령, 민주당 후보=국무총리’ 식의 공동정부 구성 협상이 시작될 전망이다. 이 경우 안 원장이 민주당적(黨籍)을 갖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새롭게 제기될 수 있다.
반대로 민주당 후보가 안 원장을 추월해 격차를 벌렸을 땐 협상이 더 순조로울 수 있다. ‘개인’인 안 원장으로선 양보를 해도 잃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지지율 5%에 불과했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40%대를 넘나들던 안 원장이 선뜻 후보직을 양보했던 전례도 있다. 안 원장 측과 가까운 민주당 관계자는 “안 원장은 신당 창당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안 원장이 양보를 해야 할 땐 일이 쉽게 풀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두 사람 간 지지세가 팽팽할 때다. 현재 여러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다자 대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양자대결에선 안 원장이 우위에 선다.
반면 단순한 야권단일 후보 적합도에선 민주당 후보가 안 원장에 상대적인 경쟁력을 갖는다. 이 경우 민주당 내부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불공정 경선 시비로 감정이 상해 있는 비(非)노무현계 진영이 안 원장 쪽으로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 하락이 가속화하자 정몽준 의원으로의 단일화를 요구하며 생겨났던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같은 그룹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일단 자당 후보가 안 원장과의 지지율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최소한의 시간은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인 듯하다.
본지가 입수한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위원장 진성준)의 ‘정국 현안 및 대응방안’이란 보고서엔 “단일화 선(先) 논의는 후보 선출에 따른 컨벤션 효과(전당대회 후 지지율 상승 효과) 감소 요인이므로 조기협상을 지양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그러면서 “단일화 주도권 확보를 위해선 후보는 안철수와 포지티브 방식의 차별화 전략을 통해 지지율을 극대화하고, 당은 박근혜 검증 및 ‘세력으로서의 당’을 전면화하는 투트랙 전략을 짜야 한다”고도 했다. ‘개인 안철수’와 ‘민주당 대선 후보’의 세(勢)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계산이다.
또 “단일화 방식에서 민주당 경선 방식에 대한 안철수 측의 선제적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안 원장 측이 조직력에서 앞서는 민주당 후보가 모바일 투표를 통한 단일화를 제안할 것을 염려해 미리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