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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만화의 생명력은 다양성"

중앙일보

입력

'오늘의 우리만화' 상이 올해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수상작을 냈다.

『슬픈나라 비통도시』(초록배 매직스) . 사람의 팔에서 나오는 피로 물총을 채워 쏘는 표지그림부터 도발적이다. 외양 역시 도록(圖錄) 같다.

군데 군데 실린 사진과 일러스트 때문이다. 4백쪽이 조금 안되는 만만찮은 분량에, 값도 '만화책' 의 가격이라고 믿기 힘든 2만원. '저게 팔릴까' 하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걱정까지 지레 든다. 작가는 강성수(32.사진) . '언더그라운드 만화' 1세대다.

하지만 만화계 경력은 무려 14년째다. 1987년 '뛰어라 빠가사리' 로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의 신인만화가상을 받으면서 데뷔했다.

'아버지와 아들' 을 『보이스 클럽』『미스터 블루』『빅 점프』등 성인지에 장기 연재했지만 단행본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로 1990년대 후반에 그렸던 단편들을 묶었다.

독자에겐 낯선 이름일지 모르지만 만화동네에선 "성수가 책을 냈다" 는 게 뉴스다. 심사위원들도 "독창성과 실험성이 돋보이는 치열한 작가정신의 산물" 이라고 극찬한다.

"이런 만화도 있어요. " 책이 독특하다는 말을 건네자 돌아온 그의 대답이다.

'다양성' 은 활동 무대가 상업지이든 언더잡지이든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이다.

"재미를 잃지 않는 한 소재와 주제 면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의 문을 두드려보고 싶다" 고 말한다.

『봄』『히스테리』 등 언더 잡지 활동을 활발하게 했지만, 독자들과 소통하는 지점은 대단한 구호나 선정적인 몸짓이 아닌, 바로 '재미' 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눈물.콧물 있는 대로 다 짜내게 하거나 뒤집어지게 사람 웃기는 거나 어느 경지 이상에 이르면 모두 '예술' 이겠죠. "

『슬픈 나라…』엔 외양은 '엽기' 지만, 한꺼풀 들추면 우울한 내용이 많다. 제목도 '슬픔의 덩어리' 를 표현한 것이다.

"한 나라만큼의 슬픔과 한 도시만큼의 비통" 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 슬픔과 비통은 이 시대와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실감하는 작가 강성수의 감수성이다.

가령 정권 교체 때마다 느꼈던, "사람은 바뀌어도 땅은 안 바뀌는구나" 싶은 절망감, 97년 청소년 보호법 시행과 함께 시작된 만화에 대한 검찰의 '마녀사냥' 이 준 울분 등은 그의 작품에 물을 주고 거름을 뿌려주는 정원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단일 캐릭터로 장기 연재하는 게 목표라 단행본을 내지 않았어요. 하지만 십수년간 만화가 강성수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들을 이제는 한번쯤 보여드리고 싶어서 책을 냈어요. 이왕 어렵게 준비한 책, 많이들 봐주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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