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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부실기업주 돈빼돌리기에 쐐기

중앙일보

입력

역외펀드와 해외 투자를 가장한 기업주의 외화 빼돌리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세청이 23일 검찰에 고발한 대한생명과 한보그룹 계열사인 동아시아가스의 외화 도피.탈세 사건은 공교롭게도 두 회사의 사주들이 이미 비슷한 사건으로 처벌을 받은 공통점이 있다.

구속 중인 한보 정태수 회장은 1997년 동아시아가스가 갖고 있던 러시아석유공사의 지분매각 대금(5천7백90만달러)중 절반 이상(3천2백70만달러)을 빼돌렸다가 구속과 함께 세금 3백63억원을 추징당했다.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도 '㈜신아원 사건' 으로 99년 구속돼 집행유예를 받았다.

당시 신아원(현 SDA인터내셔널)은 위장 무역으로 1억6천5백만달러의 해외 비자금을 조성했다가 적발됐는데 이번에 벌어진 대한생명 사건은 바로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빚어졌다.

崔회장은 당시 해외자금을 들여와 신아원의 채무를 갚는 데 1억달러를 썼는데 여전히 6천5백만달러가 부족하자 계열사인 대한생명을 다시 동원했다.

해외 유령회사를 통해 8천만달러의 자금을 조성한 뒤 이 중 6천9백만달러를 신아원의 나머지 채무상환용으로 쓴 것. 국세청은 崔회장이 이 과정에서 1천1백만달러를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은 한보 사건은 빚더미에 쌓여 회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2세들의 재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한생명 사건은 외화 도피로 발생한 그룹의 위기를 같은 방법으로 막으려다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생명은 국세청이 현 이정명 대표이사를 함께 고발한 데 대해 "당시 손실을 과대계상해 탈세한 것은 崔회장측 주도로 이뤄졌으며 李대표는 그 이후인 99년 11월에 예금보험공사측에 의해 임명됐고 법인의 대표라는 위치 때문에 고발된 것에 불과하다" 고 해명했다.

한편 이들 해외도피 자금은 현재로선 회수가 어려운 상태다. 해외 자금에도 압류할 수 있지만 사실상 '점유 능력' 이 없어 형식적 조치에 불과하다.

실제로 한보 정태수 회장의 경우 97년 그룹 부도 때 채권은행이 鄭회장의 동아시아 가스 지분(49.5%)에 대해 압류했지만 이들이 외국에서 이 지분을 임의로 매각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들이 사법처리 과정에서 법적.세무 책임을 최소화하려면 결국 도피자금을 들여올 수밖에 없고 실제 그런 선례가 있다" 며 "그러나 근본적으로 재발을 막으려면 해외투자를 위축시키지 않는 선에서 국내 기업의 외환거래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효준 기자 joon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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