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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저격수로 뜬 30대 흑인 시장 러브, 차차기 대권주자 크리스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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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아 러브(앞쪽), 크리스 크리스티.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폐막한 미 공화당 전당대회는 ‘떠오르는 샛별들’의 잔치였다. 허리케인 아이작이 개최지인 플로리다주 탬파를 강타하면서 개막 2분 만에 휴회를 선언하는 등 자칫 맥이 빠질 뻔했던 잔치 분위기를 새 얼굴들이 달궜다. 28일 미아 러브 유타주 새러토가스프링스 시장,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에 이어 29일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까지 오바마 저격수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면서 밋 롬니 대통령 후보의 최대 약점인 밋밋함을 보완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미아 러브(36)였다.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피트니스 강사 출신의 흑인 여성. 게다가 아이티 이민자 2세에 모르몬교도 신자로 소수 중에서도 소수다. 얼핏 보면 보수 색채의 공화당과 선뜻 매치가 되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단돈 1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온 부모 이야기를 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털어놓고, 희망을 가졌던 오바마가 오히려 미국을 분열시켰다고 말하자 청중은 열광했다. 그는 “소득 수준, 성, 지위에 따라 서로 적대시하게 됐고 삶은 4년 전보다 더 힘들어졌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 나는 당신에게 선언한다. 우리는 올해 당신이 내놓는 정치 상품을 절대 사지 않을 것”이라고 선전포고까지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그녀의 달변에 박수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이날 기조연설자로 무대에 오른 크리스 크리스티(50)도 오바마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에만 관심을 가지지만 롬니가 대통령이 되면 인기보다는 국가 문제 해결에 더 신경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오바마와 민주당은 우리를 재정 절벽으로 몰면서도 즐겁게 휘파람을 불 사람들”이라며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올해 초까지 유력한 대통령 경선 후보였던 크리스티는 평소 즉흥적인 연설을 즐겨왔지만 이날만큼은 진지하고 견고한 연설을 선보였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자신의 경험과 정치철학을 토대로 롬니와 공화당이 가야 할 로드맵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기 얘기에 초점을 맞춰 비난을 사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크리스티를 이날의 위너(승자)로 꼽으면서도 “연설의 95%는 전부 자신에 대한 얘기고 단 5%만 롬니를 위해 썼다”고 보도했다.

 29일 부통령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한 폴 라이언(42)은 작정한 듯한 오바마 때리기로 ‘전투견’에 비유됐다. 중서부 위스콘신 시골 출신의 이 젊은 하원 의원은 오바마를 “우리의 적수”로 지칭하며 중앙무대에 안착했다. 그는 처음에는 긴장한 듯 매우 느린 말투로 연설을 시작해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을 뻔했지만 중간부터 탄력이 붙기 시작해 “지난 4년은 배신의 세월” “그들이 남긴 건 공포와 편 가르기 뿐” 등 운율이 살아있는 강력한 문구들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그의 연설 중 오바마 공격의 근거로 사용된 사실들이 일부 틀린 것으로 드러나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한편 끝까지 비밀에 부쳐졌던 30일 롬니 대통령 후보의 수락 연설 직전의 깜짝 연사는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82)였다. 엔터테이너가 전대 연설자로 나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오랜 공화당 지지자인 그는 연단 옆에 빈 의자를 두고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앉아있는 것처럼 말을 걸며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그 역시 “오바마가 당선됐을 때 눈물을 흘렸다”며 “4년간 벌어진 국가적 망신을 해결해줄 사람이 필요한 때”라며 공격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영화 ‘황야의 무법자’ 등 전성기 때 그의 모습을 기대한 팬들은 노쇠한 모습에 당황한 듯했다. “괴상하고 당혹스러운 대참사”(MSNBC), “이스트우드가 롬니쇼를 망치다”(의회전문지 더 힐) 등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롬니 캠프는 성명을 통해 “정치적 시각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며 “그의 애드리브가 전대 분위기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었다”고 밝혔지만 오바마에게 마지막 한 방을 날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들이 스타로 떠오르면서 향후 행보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러브는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유타주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만일 민주당 6선 중진인 짐 매터슨을 꺾는다면 첫 번째 공화당 흑인 여성의원이 된다. 크리스티 역시 2016년이나 2020년 대선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될 정도로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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